‘발레’ 하면 흔히 러시아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발레의 원조는 이탈리아다. 발레라는 용어도 ‘춤을 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발레토(balletto)에서 유래됐다.

당시 발레는 지금처럼 공연이 아닌 귀족들이 부와 위신을 과시하기 위한, 특별한 형식 없이 궁정의 거실을 우아하게 거니는 정도의 사교춤이었다.

이탈리아 귀족사회에서 유행하던 발레는 1533년 메디치가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궁에 처음 소개됐다. 이때 ‘발레(Ballet)’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 당시 발레 스타는 발레리나가 아닌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였다. 1670년 그가 무대를 내려오면서 드디어 발레는 궁정을 벗어나 극장으로 옮겨갔다. 1671년 파리오페라극장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직업 무용수가 생겨났고 무대 예술로 거듭나게 됐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이후 관객들은 전통과 권위에 반발하고 자유롭고 신비로운 것을 갈망했다. ‘라 실피드’ ‘지젤’ 등 로맨틱 발레가 이때 탄생했다. 로맨틱 발레는 요정이나 악마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내용과 이국 취향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튀튀(치마)를 입은 여성 무용수가 공기 중에 떠 있는 것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가 잦아들면서 프랑스에서의 발레 인기도 시들해져 주 무대는 러시아로 넘어갔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무용교사와 안무가를 러시아로 불러들였다. 스토리와는 관계없는 무용 장면의 도입, 즉 클래식 발레가 이때 시작됐다. 클래식 발레에서는 몸을 움직이기 쉽도록 하기 위해 튀튀가 짧아졌다. 무용수들은 치마가 짧아지면서 32회전의 푸에테가 가능할 정도로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하게 됐다.

1890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어우러진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대성공을 거둔다. 이어 1892년 ‘호두까기인형’ 1895년 ‘백조의 호수’까지 클래식 발레의 3대 걸작이라 불리는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가 무대에 올랐다.

우리 국립발레단은 1962년에 창단됐다. 세계 최초의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300년 이상 차이 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발레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발레 역사에서 보듯이 발레는 왕실과 귀족들의 뒷받침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발레의 발전을 위해 사회지도층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태지 <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taejichoi3@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