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요즘 '경제기획원 30년史' 읽는 이유
정부세종청사 4동 3층 끝자리에는 기획재정부 도서관이 있다. 큰 회의실 크기에 불과하지만, 오래된 정책자료부터 따끈따끈한 베스트셀러까지 4만여권을 갖추고 있다. 33년 전 사서로 들어온 허경자 도서관장(사무관)은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선호도에 따라 부지런히 책 배치를 바꾼다.

허 관장은 최근 기자를 만나 요즘 공무원들이 ‘열독’하는 책이 있다고 말했다. 1994년에 나온 ‘경제기획원 30년사(사진)’다. 경제개발과 함께 경제기획원이 태어난 1961년부터 1980년까지는 ‘개발연대의 경제정책’, 이후 1992년까지는 ‘자율개발시대의 경제정책’ 등 두 권으로 엮인 책이다.

1400쪽의 방대한 분량 안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기획원의 정책 면모가 자세히 나와 있다. 경제기획원은 이 책을 낸 직후인 1994년 재무부와 통합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공저자 이름에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대외경제총괄과 사무관) 이름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허 관장은 “책이 나왔던 20년 전에는 남아 돌아서 창고에 몇 십권 쌓아 놨었다”며 “지난해부터 꾸준히 읽히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젊은 사무관 사이에서도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경제 부흥을 이뤘던 1960~1980년대 경제기획원의 움직임을 통해 저성장 극복의 청사진을 찾으려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귀띔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제2 한강의 기적’을 강조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EPB 라인(경제기획원 출신)’이 득세한 것도 책의 인기를 설명할 만한 요인이다. 재정부 예산실의 한 사무관은 “특정 산업 편중 현상 등 1970년대 고성장 정책의 부작용도 가감 없이 짚어내 의외로 참신했다”며 “과거에서 배우란 말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허 관장은 “지난해 대선을 전후로 해서는 복지와 동반성장 관련 베스트셀러도 많이 읽히고 있다”며 “반면 재정부 공무원들의 오랜 열독서였던 ‘사기(사마천)’가 요즘은 별로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