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계 10위권의 대형 여행사 사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올해 여행업계가 ‘최악의 해’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외래 관광객이 1100만명을 넘는 호황을 이뤘지만, 올해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율 변수에 북한 핵문제로 인한 안보 불안 등이 겹쳐 인바운드(입국) 여행시장의 감소가 불 보듯 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경기 악화로 지난해부터 예정됐던 인센티브(포상) 여행 예약도 상당 부분 취소되거나, 자국으로 여행 경로를 바꿨다고 한다.

여행산업에는 언제나 상수보다 변수가 많다. 사스(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만 터져도 격랑이 인다. 게다가 국내 관광산업 기반은 대단히 취약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수용할 호텔도 부족하고, 교통도 불편하다.

싱가포르에서 배워라

한류와 관련된 여행상품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중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와도 저가 패키지 상품 위주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이 즐길 만한 ‘놀이(fun)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질 높은 관광수요를 창출하려면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의 성공사례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

‘도덕국가’라고 불릴 만큼 보수적이던 싱가포르는 관광산업이 침체되자 2005년 바다 매립지 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컨벤션센터와 카지노를 갖춘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을 유치하며 위기 돌파에 나섰다. 복합리조트 유치는 순조롭지 않았다. 카지노 허용을 둘러싸고 “싱가포르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범죄가 만연할 것”이라는 반대론이 거셌다. 하지만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국제적인 허브도시가 되려면 카지노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의 결단은 싱가포르의 미래를 바꿔놓았다. 마리나베이샌즈호텔과 컨벤션센터에는 개장한 지 2년 만에 200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싱가포르 경제성장률은 2009년 -2%에서 2010년 14.7%로 급반전했다. 내수가 살아나자 일자리도 3만300여개나 늘었다.

카지노는 핵심 관광인프라

이후 센토사 지역에 6개의 특급호텔과 2011년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들어서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22.3%, 관광수입은 50.9%나 증가했다. 복합리조트 건설이 싱가포르를 단숨에 아시아 관광산업의 중심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박을 금지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2000년 카지노와 1만실 규모의 호텔 및 테마파크, 골프장을 갖춘 복합리조트 ‘겐팅하이랜드’를 유치한 이후 매년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한국은 지금 ‘싱가포르의 길’을 따를 것이냐 여부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해 9월 외국자본 유치 활성화를 위해 경제자유구역 내 카지노 설립 기준을 완화한 이후 지난 1월 말 세계 최대 카지노 그룹인 미국의 시저스&리포사가 2조3000억원,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가 7조5000억원을 인천국제업무지구와 월드시티에 각각 투자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마리나베이샌즈 측도 카지노에 내국인 입장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5조원가량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로벌 관광업계는 양적인 성장에 치중했던 ‘1.0시대’를 넘어 콘텐츠와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관광 2.0시대’에 들어섰다. 그 핵심은 복합리조트 건설을 포함한 놀이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카지노를 ‘관광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재해석하고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논의와 실천전략이 시급한 이유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