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주가조작 엄벌 의지를 밝힌 데 이어 어제는 청와대가 이 문제를 공식화했다. 김행 대변인이 “주가조작을 엄단할 수 있도록 유관기관들이 공동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주가조작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새 정부가 주식시장에 처음 내놓은 대책이 주가조작 단속이라는 다소 지엽말단적인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솔직히 의아스런 느낌을 갖게 된다.

지금 한국 증권시장은 산업자본 조달이라는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총체적 위기다. 외환위기 이후 각종 제도가 투기를 조장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는 투기판이 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대한 자금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뒤늦게 따라 들어온 개인투자자들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면서 시장을 빠져나가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돼 왔다. 그 결과 증시는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면서 급등락이 일상화됐고 중산층의 재산증식 장이 아니라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투기장처럼 되고 말았다. 개인투자자들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선물→옵션시장으로 점차 밀려나면서 빈털터리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빈껍데기 기업을 상장한 뒤 돈만 챙기고 도망가는 한탕주의 기업들조차 적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소비자보호나 시장단속은 뒷전이고 금융선진화니 금융허브니 하면서 오히려 투기판을 조장해온 측면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 외국 투기자본과 손잡고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걸 금융선진화로 착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개인투자자는 시장을 떠나고 기업들은 자본조달은커녕 경영권 방어에 골몰해야 하는 게 한국 증시의 현주소다. 증권시장이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하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새 정부가 지엽말단의 주가조작 문제부터 거론하고 나서니 적잖이 황당스러운 게 사실이다. 근본적인 병인(病因)을 찾아내 손보는 것이 새 정부의 과제다. 대통령 측근에 국정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하는 참모가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