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자연은 인간이 가진 표현력의 한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웅숭깊은 산맥과 협곡 사이로 태고의 바닷길이 열린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로 떠난 6박7일간의 여행 이야기다.

○태초에 자연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말을 한다. 기차를 타고 다시 뱃길을 돌아 나서면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그림 같은 민가가 있고 호수와 너른 초지와 바다가 엇갈리듯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 노르웨이의 자연을 핵심적으로 볼 수 있는 패키지가 ‘노르웨이 인 어 넛셸(Norway in a Nutshell)’이다.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절대 풍광의 핵심만을 뽑아낸 코스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오슬로에서 뮈르달~플롬~구드방엔~보스~베르겐까지의 일정은 다소 길지만 평생 이만한 경험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륙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는 빙곡이 침수해 생긴 좁고 깊은 바닷길이다. 피오르는 뱃길을 따라가면 갈수록 절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것이 송네 피오르다. ‘노르웨이의 영혼’이자 정수. 무려 200㎞가 넘는 뱃길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눈이 너무 호사를 누려서인지 피곤한 줄도 모른다.

송네 피오르 중 가장 좁은 네뢰이 피오르와 플롬에서 출발한 유람선의 종착점인 구드방엔은 웅장한 산맥이 남성적인 매력을 숨막힐 듯 뽑아내는 곳. 그 안에 100년은 족히 넘었을 호텔이 그림처럼 얹혀 있다. 사람이 자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품은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연의 힘을 늘 느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그의 음악과 뭉크의 그림

에드바르 그리그의 키가 그렇게 작은 줄 몰랐다. 단신의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민족적인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가 만들어낸 음악의 세계는 깊고 풍성하다. 페르귄트 조곡과 피아노협주곡 a단조를 듣고 있으면 귀보다 입안에 소리가 맺힌다. 싸한 박하 맛 같기도 하고, 달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처럼 아린 뒷맛을 안겨준다.

그리그가 아내 니나와 함께 말년을 보낸 베르겐 교외의 생가는 스위스풍의 건물로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럽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인 트롤이 사는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트롤하우젠의 전면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는 오솔길로 연결돼 있고 그리그가 생전에 작품을 구상하며 몇 번씩이나 다녔을 길은 운치 있고 깊었다. 지금은 박물관과 작은 콘서트홀을 갖춘 문화공간이 됐다.

노르웨이에는 또 한 명의 에드바르가 있다. 뭉크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화가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화가다. 뭉크의 작품들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절규’는 몽환적이면서도 인간 심리의 내면까지 보여주는 듯한 오묘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스탕달 신드롬에라도 걸린 듯 뭉크의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는 불우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심한 성격이상자였고 누이와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죽음은 그가 평생 절망과 공포라는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 원인이 됐다. 내면의 고통과 공포를 그린 ‘절규’는 결국 뭉크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뭉크는 유화에만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판화에도 그만의 독특한 숨결을 불어넣어 걸작을 만들었다. 미술에 문외한이어도 뭉크의 그림에는 절묘한 교감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수한 자연 속 수수한 사람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도시 오슬로와 베르겐. 오슬로는 현재의 수도이고 베르겐은 한자동맹 시절의 옛 수도다. 오래된 도시이기에 베르겐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노르웨이인이 아니라 베르게너라고 자신을 불러주길 원한다.

오슬로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청이 있고, 노벨평화센터가 있다.

오슬로의 또다른 자랑은 오페라하우스. 해안도로가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형상화한 것이다. 오페라하우스의 외부는 장엄하고 웅장하지만 내부는 목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부드럽다. 발틱 오크를 사용한 오디토리움 벽과 노르웨이 전통 배를 만드는 장인이 직접 깎아 만든 계단은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노르웨이의 조각가인 비겔란의 작품을 모아놓은 조각 공원은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 걸작을 만드는지 실감하게 한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하나하나 찍어놓은 듯 만든 조각물에는 비겔란의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공원의 끝에는 전나무 숲길이 놓여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노래처럼 가볍고 발랄하다.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간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특유의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집들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감을 듬뿍 느끼게 한다. 베르겐은 예전에 바이킹의 땅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도시답게 베르겐의 건축물들은 고아하지만 그만큼 오래된 향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 또한 수수하고 소박하다. 날씨가 추운 탓이기도 하지만 질박한 성품이 만들어낸 실용주의적인 풍토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노르웨이의 코드는 ‘즐거움’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 북해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잘 알려진 부자나라 노르웨이의 국민들은 실상 그다지 부유하지 않다. 급여생활자의 평균 연봉이 한국돈 1억원에 육박하지만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복지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교육이다.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의 박노자 동양학과 교수는 노르웨이의 코드를 ‘즐거움’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의 코드가 ‘절대 생존’이라면 이들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향락도 별로 없고 늦은 귀갓길 취하도록 마시는 술자리도 거의 없는 지루한 나라. 헤드라인 뉴스가 전날 있었던 교통사고이고 이웃 영국의 총리로 누가 뽑힐지가 주요 관심사인 나라. 그들은 행복할까? 천국의 지루함보다 비루하지만 지옥의 번잡함이 더 행복할까?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 여행팁

오슬로까지는 대개 핀란드 헬싱키공항을 경유한다. 인천공항에서 헬싱키까지는 비행기로 9시간30분가량 걸린다. 여기서 오슬로까지 약 1시간30분 더 간다. 핀에어가 인천공항에서 매일 운항한다.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인천에서 터키까지 대략 11시간30분이 걸리며 이스탄불에서 오슬로까지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노르웨이의 물가는 비싸다. 물 1병이 6000원, 햄버거가 1만8000원에 달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싸다고만 할 수도 없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일절 짓지 않는다. 외국에 공장을 만들어 공산품을 수입해 쓴다.

노르웨이인들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생선류를 즐겨 먹는다. 바다를 돌아다니던 바이킹 문화 탓에 음식문화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주식은 빵이다. 검은 빵과 삶은 감자를 즐기고 양고기와 채소를 교대로 겹쳐서 찐 음식이 많다. 양고기 스테이크, 순록 로스트 등의 별미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요리다. 겨울이 길어서 저장식품인 햄 종류가 다양하다. 청어 초절임, 연어·대구·송어 소금절임 등이 식탁에 자주 오른다.

날씨는 매우 춥다. 봄 여름에도 안심할 수 없다. 점퍼나 따스한 옷, 자주 비가 내리기 때문에 방수가 되는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면세점에서 40유로 이상의 물품을 샀으면 반드시 영수증을 챙기자. 나중에 공항 환전소에서 15~19% 정도를 돌려받을 수 있다.

오슬로와 베르겐에선 관광객들을 위한 ‘오슬로 패스(Oslo Pass)’가 유용하다. 국립미술관, 뭉크박물관, 바이킹 배 박물관, 입센박물관, 노벨평화센터 같은 오슬로 시내 주요 박물관과 관광지 35곳을 무료 입장할 수 있고, 버스·전차·보트·지역운행 기차 등 시내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다. 오슬로 패스는 오슬로 중앙역 관광안내센터, 시청관광안내센터에서 살 수 있으며 24시간·48시간·72시간 등 세 종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