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적이 좋을 수가 없는데 은행들은 담보나 실적을 갖고 오라고 하니 대출도 ‘빈익빈 부익부’가 될 수밖에 없다.”

중견 제조업체의 A사장은 “정부에서 R&D는 많이 하라고 하지만 막상 은행 창구에 가면 우리 같은 회사는 찬밥”이라며 이같이 털어놨다. A사장은 “당장 10억~20억원만 저리에 조달할 수 있으면 회사 운영에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했다.

특허청과 산업은행은 A사장과 같은 처지의 기업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특허 담보대출’을 내놓는다. 특허를 자산으로 평가해 거래를 활성화시키려는 특허청과 유망 기술 중소·중견기업에 자금 지원을 늘려온 산업은행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지원 프로그램은 특허를 담보로 한 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를 가정, 회수 방안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지식재산 거래시장에 숨통을 터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특허청은 기업당 1500만~2000만원이 들어가는 특허 가치평가 비용을 부담하고 회수지원펀드에도 100억원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운영 주체로 나선다. 한국발명진흥회 등 5~6개의 특허평가 전문기관으로 평가단을 구성, 보유 특허의 현재가치를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50억원을 펀드에 출자하는 동시에 특허담보대출을 받은 업체가 사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대출금의 50%까지는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해 위험 부담을 덜게 됐다. 대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담보로 보유한 특허를 회수지원펀드로 넘기면 50%까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번 특허담보대출은 기존의 특허펀드에서 한 단계 진화한 ‘지식재산권(IP) 금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특허펀드를 통해 음향회사 ‘소닉티어’와 전동차 출입문 제조회사인 ‘소명’이 가진 특허권을 70억원에 사들였으나 이는 펀드가 기업이 보유한 특허를 매입하고 기업은 펀드에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특허담보대출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동안은 특허의 자산가치 평가와 특허업체 부실화 때의 복잡한 권리관계 탓에 담보대출보다는 특허펀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특허청 관계자는 “객관적인 특허가치 평가와 대출에 나서는 금융회사의 위험도를 분산시키는 구조로 설계해 놨기 때문에 앞으로 산업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특허담보대출을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허청과 산업은행은 특허거래 활성화를 위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업체의 특허를 한데 모아 상업화하는 ‘특허관리회사’도 별도로 설립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매입특허 거래를 통한 수익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회사는 망해도 특허는 살아서 거래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