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극복후 부자사업 접고 ‘휴먼동호회’ 만든 송명엽씨(위너플 대표)

혜민스님의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유시민 전 의원의 ‘어떻게 살 것인가’, 스타강사쇼 김미경의 ‘드림 온’ 등은 최근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도서다. 자세히 살펴보면 책의 제목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각박하고 지루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만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힘겹다는 것을 이 책들은 웅변하고 있다. 힘겹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새롭고 이색적인 활동에 도전하는 주인공이 있다.

‘위너플(WINNERPEL)’의 송명엽(30) 대표가 그 사람이다. 그는 한 때 월 2000~3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잘나가던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송 대표는 ‘새로움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취지를 갖고 ‘위너플’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수천명이 넘는 사람들과 ‘플래시몹’. ‘버킷리스트’ 등 다양하고 특별한 활동에 도전한다.

처음 보는 빨간 딱지…채권자에게 시달리다

그는 그저 컴퓨터를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음료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와 가정 일을 도맡았던 어머니, 형의 말을 잘 따르던 동생 등 단란한 가정의 장남이었다.

그는 외국계열 회사에서 근무했던 아버지 때문에 뭐하나 모자란 것 없이 풍족한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산업정보시스템’이라는 전공을 선택한 그는 컴퓨터 공학에 관련된 공부를 했고 군대를 다녀오는 등 남들과 다르지 않은 길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송 대표가 군대를 전역하고 학업에 열중하려는 시기에 갑자기 집안에 불행이 찾아들었다. 낯선 이들이 무단으로 그의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은 원성을 높이며 송 대표의 아버지가 있는 곳을 대라며 난동을 부렸다.

어떤 이들은 모든 가구에 빨간 딱지(압류)를 붙였다. 송 대표는 원인도 모른 채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빚쟁이들을 막는 데에 급급했다. 나중에서야 아버지가 지인을 통해 어떤 회사에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수십억의 빛을 떠안았다. 남부럽지 않은 평범했던 삶이 한순간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이 때부는 그는 매일 빚을 갚으라는 독촉전화를 받았고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쳐들어와 가구를 집어 던지는 채권자들의 협박에 시달렸다.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빚쟁이들로부터 숨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결국 그는 ‘재산포기각서’를 작성하는 등 돈을 벌 때마다 빚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하며 빚쟁이들을 돌려보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한창 미래를 향해 꿈을 좇을 나이에 모든 것은 잃었던 것이다.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앞날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대학시절 컴퓨터를 배웠던 것이 전부였던 그에게 취업의 문턱 또한 험난하기만 했다. 송 대표는 초기자금이 거의 들지 않는 온라인쇼핑몰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조지아’라는 캔커피를 온라인마켓 상품으로 정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일이지만 의외로 그의 사업은 원활하게 운영됐다. ‘죠지아’라는 캔커피가 국내에 판매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니아층들이 대량 구매하는 등 매출액은 월 2000~3000여만원을 웃돌았다.

또 다시 역경의 길에 놓이다

개인사무실도 생기고 그의 사업은 잘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또 다시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옆 사무실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던 사장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사회초년병인 송 대표는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가방을 수입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이 새 사업이었다. 같이 동업을 하는 사장이 직접 물건을 들여왔고 그는 온라인 마켓을 운영했다.

그는 가방이 커피보다 단가도 비싸고 판매 이윤도 높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물건이 팔리지 않았다. 경쟁업체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고 동업자가 품질이 매우 떨어지는 가방을 헐값에 들여와 일반 시중가격에 판매한 것이 문제였다.

밤새도록 일에 매진했으나 수익이 없기 때문에 또 다시 궁핍한 삶에 들어섰다. 결국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사업 실패의 쓴잔을 마신다.

송 대표는 실패의 이유를 고민했고 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는 지난 쇼핑몰 사업으로 유통에 대한 경험이 적지 않게 있었고 인터넷 활용에 관한 기초지식도 고르게 갖고 있었다. 다만 온라인쇼핑몰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 웹디자인 등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다. 때문에 그는 이에 대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한 의류회사 웹디자이너 보조로 입사하게 된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상사가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당장 일할 사람을 채용하려고 했으나 디자인에 관한 지식이 없는 그였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온갖 무시와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오직 배우겠다는 의지 하나로 힘든 과정을 참았다.

퇴근 후에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며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디자인에 관한 교육에 참가 하는 등 지식을 쌓아갔다. 그는 마침내 한 달의 시간이 흐른 후 보조에서 벗어나 정식 웹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승진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기관의 교육을 한번 수강하고 돌아가는데 저는 완벽히 숙지할 때까지 교육에 참가했습니다. 나중에는 강사들이 저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하더군요”

&51211;은 나이에 큰 돈을 벌다

그는 지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디자인뿐만 아니라 영업, 도매, 상품의 품질, 사진, 소비자의 심리 등 쇼핑몰 구축에 관한 전반적인 일들을 세세히 배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한 의류 사입자(유통업자)를 만난다.

송 대표는 이 사입자를 통해 의류 매매와 공급 등 유통에 관해 전반적으로 배워나갔다. 이후 기존 직장에서 독립하고 이 사입자와 함께 온라인 쇼핑몰을 차리게 된다. 그들은 초기에 남성복 위주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경쟁 업체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송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고 트레이닝복(운동복)을 커플세트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웰빙을 한창 추구하던 시기라 많은 연인들이 운동을 위해 주문했던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상품을 입고해도 남성과 여성에게 팔수 있었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두벌 이상을 구입했기 때문에 1석2조였다. 순식간에 매출이 월 2000~3000만원을 넘어섰다.

그는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다. 인력보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3~4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나이 28세에 가족과 함께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들 나날들이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의 안정도 찾고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빚을 갚았지만 그는 쇼핑몰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인력 또한 보충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몸이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직원을 채용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상태에서 반복적인 일상이 계속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공허함과 삶의 회의감마저 느끼게 됐다. 심지어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람들을 만나 소통을 하는 등 대화를 통해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후 친구들을 만나고 각종 대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는 등 사교활동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추억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대학시절 기억이라곤 군대와 일이 전부였던 탓이다.

“친구들은 제가 돈을 많이 번다고 부러워했지만 저는 전혀 좋지 않았어요. 꿈을 좇는 친구들도 있고 결혼을 해 가정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은 날의 추억이 없고 꿈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삶의 목적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처럼 계속 산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일을 그만두고 꿈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생각보다 삶의 목표를 찾는 것은 쉽지 많은 않았다.

학생 때는 공부만 했고 20대에는 일에만 전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학교라도 다니면서 차근차근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복학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 수업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스펙만 쌓는 학생들, 성적에 목메어 과제를 베껴 쓰는 이들을 보며 각박한 사회에 아픔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전공수업을 포기하고 음악, 예술, 철학 등 교양과목을 수강한다. 그러다가 어떤 한 음악 교수의 조언을 듣고 그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그 당시 음악교수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은 일 년에 1~2번씩 친구들과 공연을 한다고요. 사람들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한다면 언젠간 자살, 범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작더라도 다른 경험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죠. 그 교수님은 자신이 사회적 물의를 막는 영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수가 말한 것과 자신의 상황이 유사하다고 느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송 대표는 과거에 시청했던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상기하며 인생을 얼마나 통쾌하게 즐길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지 되돌아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변화를 주고 이롭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송 대표는 ‘런닝맨’과 비슷한 이색적은 사회활동을 만들기로 다짐하고 기획했다. 약 두 달간 구성을 하면서 혼자 보다는 여러명이 동참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팀원을 모았다. 마침내 지난 2011년 ‘위너플’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동호회를 통해 ‘새로운 도전과 만남 그리고 경험’을 목표로 둔 슬로건을 내걸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색적인 활동을 선보였다.

현재 ‘워너플’에는 8600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참여해 무인도 체험, 패러글라이딩, 플래시몹, 하루 종일 걷기, 아이스타임 등 혼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새롭고 다양한 활동과 이벤트들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해보지 못했던 이색적인 경험을 하면서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있어요. 매일 한 번씩 삶에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예를 들면 지각을 했는데 감사, 시험에 낙방에도 버스를 놓쳐도 감사, 넘어져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지각을 하거나 넘어져도 이로 인해 그 이후에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가장 감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기자가 물었다.

송 대표는 “기자님과 만나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되네요. 평소에 말하지 않는 과거였는데 제가 살아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함으로써 다시 저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