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공식일정 없음. 1차관:19일 국무회의(참석 여부 미정).’

기획재정부 대변인실이 작성한 장·차관의 이번주 일정표다. 지난달 17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부 장관이 지명된 뒤 일정표의 흰 공백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의 이웃 부처들은 이미 새 수장을 맞아 업무보고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재정부의 긴 겨울잠과 대조되는 분위기다.

현 내정자는 지명 후 한 달이 넘도록 취임을 못했다. 지난 13일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야당은 현 내정자의 지명 철회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야가 진통 끝에 합의한 정부조직법이 20일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식물 부총리’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청사에 내려올 수도 없다.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서 ‘일단 대기’ 상태다.

지난 16일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도 현 내정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새 정부 출범식과 다름 없는 행사였지만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할 경제부총리 자리는 정작 공석이었다. 국무회의에 대신 참석할 수 있는 고위직도 없다. 신제윤 1차관이 금융위원장으로, 김동연 2차관이 국무총리실장을 맡으며 차관실을 비웠기 때문이다.

현 내정자 임명이 늦어지면서 차관들 인선도 미뤄졌다. 공백을 메워줘야 할 다른 고위직들도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주형환 차관보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백운찬 세제실장은 관세청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세원 확보, 재정지출 구조조정 등 현안 작업에 속도가 붙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빨리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생산과 투자, 소비 등 실물지표가 하락세인데다 대외변수도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경제수장은 한 달 넘게 공백 상태다.

현 내정자는 금융과 부동산 등을 아우르는 경제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지만, 서울 임시사무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재정부 공무원들은 보고서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게 더 답답하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