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하려다 설사·경련…심하면 신장 투석
급성 신장손상으로 인한 경련 등 신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변비용 설사제를 일부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서울 시내 10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5개 병원에서 장세척 용도로는 사용이 금지된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다고 19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한국파마의 ‘솔린액오랄’을 처방받아 복용한 뒤 경련 등 부작용을 겪은 소비자의 신고 접수에 따라 이뤄졌다.

대장내시경 검사용으로 금지된 변비용 설사제는 9개 업체의 11개 제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2009년 인산나트륨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이들 제품에 대해 장세척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식약청은 또 2011년 말 ‘이들 제품을 장세척 용도로 사용 시 급성 신장손상 등이 우려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해당 제품은 유니메드제약의 프리트포스포소다액, 한국파마의 솔린액오랄·솔린액오랄에스, 태준제약의 콜크린액, 동인당제약의 포스파놀액·포스파놀액오랄-에스, 경남제약의 세크린오랄액, 동성제약의 올인액, 조아제약의 쿨린액, 청계제약의 포스크린액, 초당약품의 비비올오랄액 등이다.

금지된 변비용 설사제를 복용할 경우 신체 내 대사기능이 마비되는 전해질(이온) 장애, 신장의 독성 중화기능이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급성 신장손상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소비자원 측은 설명했다. 예컨대 신체 균형이 무너지고, 메쓰꺼움과 구토 등을 일으키게 된다. 심할 경우 신장 수치를 조절하지 못해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도 인산나트륨제제(인산일수소나트륨인산이수소나트륨)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8년 “경구용 인산나트륨제제를 사용할 경우 전해질 이상으로 신장 세뇨관에 인산칼슘이 결정 형태로 축적돼 급성 신장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해당 제품의 장세척 용도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또 2009년 캐나다 보건당국은 해당 의약품 관련 53건의 부작용 신고 중 30건이 신장 장애 관련 내용이며, 27건은 부작용 증세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해당 제품을 장세척 용도로 사용하면 안된다고 권고했다.

소비자원은 서울 시내 대학병원 2곳과 대장항문 전문병원 1곳, 개인 병원 7곳 등 10개 병원의 장세척제 처방현황을 조사한 결과 장세척제로 허용되지 않은 약품을 쓰는 곳이 5곳이었다고 밝혔지만 병원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 식약청의 허가를 받긴 했지만 인산나트륨 함량이 불허 제품과 비슷해 허가사항 변경이 필요한 약품(한국파마의 ‘크리콜론정’)을 사용하는 곳이 1곳 있었다.

대장내시경 장세척 용도에 적합한 의약품은 드림파마의 ‘콜론라이트산’, 태준제약의 ‘쿨프렙산’, 한국팜비오의 ‘피코라이트산’ 등 3개 제품이다.

이에 대해 한 제약사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장세척 용도’가 아니라 ‘변비용 설사제’로 병원에 납품한 것이기 때문에 제약업체로선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대장내시경 세정제는 4ℓ 용량을 복용하게 한다”며 “특정 환자들에겐 이게 부담스러워 간편하게 복용하는 제품(성인용 20㎖ 또는 알약)을 권하고 있는데 이번에 그런 사례가 적발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경남제약 측은 “세크린오랄액은 우리가 제조·유통하지 않은 제품”이라며 “소비자원의 조사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정철 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장은 “어떤 약을 사용하는지 소비자가 직접 병원에 확인해야 하며 특히 기존에 신장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환자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 복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식약청과 보건복지부에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벌여 금지약품 처방 병원에 대해선 의료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릴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민지혜/이준혁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