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 뒤흔든 '키프로스 구제금융' 왜 꼬였나…그리스 국채 몰빵·예금보장 혼란이 사태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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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유로 미만 예금에는 부담금 면제 수정안 냈지만 의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
‘따르릉~.’ 18일 밤(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각국 재무장관 집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등은 긴급 전화회의를 열었다. 안건은 지중해 동쪽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조건 수정안. 부도 위기에 몰린 키프로스에 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신 모든 예금자에게 부담금을 물린다는 당초 조건을 바꾸는 방안을 논의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회의 결과를 반영, 19일 의회에 수정안을 제출했다. 2만유로(약 2870만원) 미만의 예금에는 부담금을 물리지 않고, 2만~10만유로(약 1억4400만원) 예금과 10만유로 이상 예금에 대한 부담률은 당초대로 각각 6.75%, 9.9%로 한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의 10만유로 이하 예금보장 원칙이 무너지는 것에 키프로스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한 데다 미국 재무부까지 나서 해법을 요구한 결과다. 하지만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수정안대로 하면 유로존이 요구하는 58억유로의 세수에서 3억유로 정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벌어진 혼란에는 독일과 그리스, 러시아 등 주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그리스 국채 몰빵 투자 왜 했나
키프로스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그리스 영향 아래 있다. 인구의 77%가 그리스인이며 공용어 역시 그리스어다. 이 때문에 키프로스 은행들은 발행액이 적은 키프로스 국채 대신 그리스 국채에 투자해 왔다.
조세피난처를 찾는 해외 자금이 대거 유입돼 은행의 덩치가 커지면서 그리스 국채 투자도 늘었다. 2010년 재정위기 전까지 은행들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6배에 달했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돕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지난해 초 그리스 국채를 대거 상각하면서 키프로스 은행권은 45억유로(약 6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예금자 보호 원칙 왜 깨려 했나
유럽중앙은행(ECB)의 최대주주인 독일의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이다. 독일 내에서는 “정부가 독일 돈을 가난한 남유럽 국가에 퍼준다”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우파 연정 지지율은 45%로 좌파 연합(52%)에 뒤졌다. EU 탈퇴를 외치는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도 인기를 끌고 있어 집권 기민당의 9월 총선 필패론이 높아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메르켈 총리는 키프로스가 요구한 170억유로 구제금융 규모를 줄이고 차액을 키프로스 예금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주도했다. 주주나 채권투자자가 아닌 예금자에 부담을 지운 첫 번째 구제금융 사례다.
○러시아 돈이 많은 이유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키프로스 내 러시아 자금이 은행 예금의 절반에 가까운 310억달러(약 34조원)인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러시아 자금 유입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러시아 자산가들이 재산을 키프로스로 옮겼다. 키프로스 2대 도시 리마솔은 ‘리마솔그라드’라고 불릴 정도로 러시아 거주자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조세협정으로 10%에 불과한 키프로스 법인세율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러시아에서는 키프로스에 가지 않고도 이곳에 은행 계좌를 개설한 뒤 인터넷으로 입·출금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 위기 재점화될까
키프로스의 유로존 내 경제 비중은 각국 GDP 합계 대비 0.2%다. 100억유로 구제금융 규모도 2차까지 2400억유로에 달하는 그리스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18일 유로화 가치가 장중 한때 14개월 만에 최대 낙폭으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해결 과정이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예금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과정에서 유로존 각국이 갖은 혼선을 빚으며 작은 문제를 크게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금자 보호 원칙을 깨면 앞으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재정위기가 촉발될 경우 사태 수습이 어려워질 수 있다. 키프로스의 전례를 본 예금자들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나설 수 있어서다. 앤드루 밀리건 스탠더드생명투자 글로벌전략팀장은 “투자자에게 유로존 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남윤선 기자 autonomy@hankyung.com
키프로스 정부는 회의 결과를 반영, 19일 의회에 수정안을 제출했다. 2만유로(약 2870만원) 미만의 예금에는 부담금을 물리지 않고, 2만~10만유로(약 1억4400만원) 예금과 10만유로 이상 예금에 대한 부담률은 당초대로 각각 6.75%, 9.9%로 한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의 10만유로 이하 예금보장 원칙이 무너지는 것에 키프로스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한 데다 미국 재무부까지 나서 해법을 요구한 결과다. 하지만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수정안대로 하면 유로존이 요구하는 58억유로의 세수에서 3억유로 정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벌어진 혼란에는 독일과 그리스, 러시아 등 주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그리스 국채 몰빵 투자 왜 했나
키프로스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그리스 영향 아래 있다. 인구의 77%가 그리스인이며 공용어 역시 그리스어다. 이 때문에 키프로스 은행들은 발행액이 적은 키프로스 국채 대신 그리스 국채에 투자해 왔다.
조세피난처를 찾는 해외 자금이 대거 유입돼 은행의 덩치가 커지면서 그리스 국채 투자도 늘었다. 2010년 재정위기 전까지 은행들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6배에 달했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돕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지난해 초 그리스 국채를 대거 상각하면서 키프로스 은행권은 45억유로(약 6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예금자 보호 원칙 왜 깨려 했나
유럽중앙은행(ECB)의 최대주주인 독일의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이다. 독일 내에서는 “정부가 독일 돈을 가난한 남유럽 국가에 퍼준다”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우파 연정 지지율은 45%로 좌파 연합(52%)에 뒤졌다. EU 탈퇴를 외치는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도 인기를 끌고 있어 집권 기민당의 9월 총선 필패론이 높아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메르켈 총리는 키프로스가 요구한 170억유로 구제금융 규모를 줄이고 차액을 키프로스 예금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주도했다. 주주나 채권투자자가 아닌 예금자에 부담을 지운 첫 번째 구제금융 사례다.
○러시아 돈이 많은 이유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키프로스 내 러시아 자금이 은행 예금의 절반에 가까운 310억달러(약 34조원)인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러시아 자금 유입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러시아 자산가들이 재산을 키프로스로 옮겼다. 키프로스 2대 도시 리마솔은 ‘리마솔그라드’라고 불릴 정도로 러시아 거주자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조세협정으로 10%에 불과한 키프로스 법인세율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러시아에서는 키프로스에 가지 않고도 이곳에 은행 계좌를 개설한 뒤 인터넷으로 입·출금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 위기 재점화될까
키프로스의 유로존 내 경제 비중은 각국 GDP 합계 대비 0.2%다. 100억유로 구제금융 규모도 2차까지 2400억유로에 달하는 그리스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18일 유로화 가치가 장중 한때 14개월 만에 최대 낙폭으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해결 과정이 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예금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과정에서 유로존 각국이 갖은 혼선을 빚으며 작은 문제를 크게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금자 보호 원칙을 깨면 앞으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재정위기가 촉발될 경우 사태 수습이 어려워질 수 있다. 키프로스의 전례를 본 예금자들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나설 수 있어서다. 앤드루 밀리건 스탠더드생명투자 글로벌전략팀장은 “투자자에게 유로존 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남윤선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