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세청 홈페이지가 갑자기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날 출시된 재형저축에 들려는 사람들이 가입조건인 연소득 5000만원 미만을 증명하기 위해 확인서를 떼려고 한꺼번에 몰린 결과다.

○재형저축 구조도 몰랐다

업계 관계자는 19일 “기획재정부가 서민의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정책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상품의 조기 출시에만 매달리면서 금융위원회, 국세청과 사전협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전 협의를 통해 수요조사를 하고 국세청 서버의 용량만 점검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재형저축이 세제 혜택을 주는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상품구조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 4.5%대의 고금리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가입 후 3년이 지나면 저축잔액이 커져 금리가 떨어지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최저금리 보장형과 같은 다양한 상품이 나오도록 유도하겠다”며 뒷북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수십만명이 가입한 뒤였다.

금융권에서는 재형저축 상품의 출시과정에서 나타난 혼란은 재정부의 과욕과 금융당국의 방관이 빚은 합작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 간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저소득층 고용지원 프로그램을 둘러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간 주도권 다툼도 지난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기 전까지 무려 1년 이상을 끌었다.

고용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복지부의 ‘희망리본사업’은 취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 시 수당을 주고, 취업하면 지원금을 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사업이다. 지원대상만 차상위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 이상 120% 미만)과 기초수급자로 다를 뿐이다.

하지만 두 부처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면서 2011년 7월부터 주도권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지난달 인수위에서 난상토론이 이어진 끝에 최근에야 양 부처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일할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자활사업은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당장 일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희망리본사업을 통해 재도전할 기회를 주기로 한 것. 재정부 관계자는 “두 부처 모두 기존에 해왔던 사업과 예산 배분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게 갈등의 원인이었다”며 “정작 정책수요자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고질화된 부처이기주의도 원인

산업 진흥을 맡고 있는 지식경제부와 환경 규제를 담당하는 환경부 간 갈등도 부처 이기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시행시기를 놓고 잡음을 냈던 두 부처는 지난달 지경부가 확정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놓고 또다시 신경전을 벌였다.

환경부는 2027년까지 화력발전소 18기를 신설하는 이 계획이 온실가스 감축에 걸림돌이 된다며 제동을 건 것. 반면 지경부는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발전소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며 기본계획을 밀어붙였다.

관계부처 장관회의의 의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 해결도 해묵은 과제 중 하나다. 재정부 관계자는 “자기 부처의 역점사업이라는 이유로 관계부처회의 안건에 올리기를 꺼리는 부처가 많다”고 말했다.

○통계도 칸막이에 갇혔다

정책의 기본이 되는 통계가 부처 간에 공유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박형수 통계청장은 “부처 안의 칸막이에 갇혀 있는 통계가 많다”며 “취득·소득세만 해도 재정부와 행정안전부의 숫자가 다르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과 국세청의 세원정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 등 협업을 해야 할 분야가 많은데 공유가 안 된다는 것.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국세청의 자료제공 거부로 지역가입자들의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용근로자 549만명의 소득정보를 비롯해 65만명에 달하는 양도·상속·증여소득자 정보 등이 대표적이다. 연 소득 4000만원 미만의 금융소득만 50조원에 달하고 퇴직소득도 27조원에 육박하지만 이 자료 역시 건강보험공단이 공유하지 못해 건보료를 매기지 못하고 있다.

이심기/류시훈/양병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