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보수우파정부임에도 보편적 복지에 근접하는 일부 복지공약의 실천의지를 다지고 있다. 복지를 늘리자는 데 반대하면 ‘쩨쩨하고 몰인정한 차가운 사람’이고, 찬성하면 ‘훌륭한 인격과 덕망을 지닌 따뜻한 사람’인가? 아무런 논리적 고찰 없이 감성적 직관으로 취한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국가 백년대계에 관련된 중대사안을 감성적 직관으로만 결정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에는 두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하나는 ‘노력과 보상 간의 상관관계’가 무너져 과학자, 기술자처럼 남보다 공부 많이 하고 인내심도 있어야 하는 직업을 기피하게 되고, 기업하는 데 따른 위험도 부담하려 하지 않아 국가 전체의 활력과 경쟁력이 떨어져 쇠락의 길로 가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남보다 소득이 그다지 많지도 않고 조금 많은 것까지 대부분 세금으로 거둬 간다면 노력할 이유가 없다.

다른 함정은 ‘사회주의 톱니바퀴(socialist ratchet)’에 빠져 종국적으로 국가사회주의로 귀착되는 것이다. 보수우파정부가 들어서 지나친 복지제도를 조금 손질하면 진보좌파정부가 들어와 원위치시키고 하나 더 보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국가가 ‘좌향 앞으로’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현상이 사회주의 톱니바퀴인데, 우리는 보수우파정부가 적극적이니 ‘사회주의 특급열차(socialist express)’를 탈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1831년에 미국 민주주의를 둘러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emocratie en Amerique)’라는 책을 썼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에 의미심장한 경고를 발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평등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 무기력한 국민이 정부에 의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제정치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세기 초 이후 복지를 확대하자는 민주당과 필요최소한의 복지를 주장하는 공화당이 대립해 왔다. 최근에 비대해진 연방정부가 국민생활을 간섭하는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과 함께 미국이 유럽사회주의로 이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오바마케어가 국가기관이 의료서비스를 배급하는 영국 의료제도를 본뜨고 있어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혜택은 기회의 평등을 원칙으로 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계층에 한정돼야 한다. 더욱이 치열한 국제경쟁에 노출돼 있고 안보상황도 위중한 대한민국이 고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국가의 생존을 어렵게 할 수 있어 신중을 요한다. 복지에 치중하면 기술개발, 인프라확충을 위한 재정투자가 줄어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군사력 증강을 위한 신무기 개발도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지급되는 보육비와 학교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은 꼭 필요한 대상에게만 주고 남는 돈은 빈곤층학생 방과후교육, 빈곤층우수학생 해외유학 지원, 벤처기업 창업 지원에 쓰는 것이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것이며 국가장래를 위하는 길이다.

건강보험보장률을 높여 의료서비스에 대한 과잉수요를 조장하는 것은 무릎 수술을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하고 진료를 받지 못해 환자가 무더기로 사망한 영국 무상의료제도의 참담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처사다. 국가제도는 좋은 의도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인간행동양식에 관한 객관적 고찰이 있어야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통사람은 노력 없이 안락하게 사는 것을 선호하고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애국적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던 유럽사회주의 정치지도자들이 간과했던 점이다. 국익과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일반대중을 이해한 것이, 염원했던 ‘영원한 공동번영’의 꿈을 산산조각 낸 이유이다.

보편적 복지는 국가경제의 능률을 떨어뜨려 보편적 빈곤으로 인도한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사례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사명인 ‘제2 한강기적’을 이루려면 복지는 선택적이어야 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보다 ‘증세 없는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최중경 <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