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엄청난 소의 덩치에 압도돼 어디에 칼을 댈지 몰랐지만 소의 뼈와 살이 맞물린 이치를 터득하고 나니 마치 큰길을 내달리듯 힘 안 들이고 순식간에 살을 발려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무조건 힘만 쓴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 칼질을 연마하니 일이 쉬워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연의 이치를 어떻게 터득하느냐이다. 그게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는 만무하다. 승려가 불도의 입문을 비질로 시작하듯 요령을 부리지 않고 일을 숙달해야만 하늘은 그 비밀의 문을 열어준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일의 이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도는 그렇게 트이는 것이다. ‘장자’의 ‘포정해우(疱丁解牛)’ 에피소드가 가르쳐 준 지혜다.
미얀마 살링기의 바구니를 잔뜩 이고 진 아낙은 시야까지 가린 채 곡예하듯 자전거로 이동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나아가고 있다. 도가 트인 자의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제 당신이 도가 트일 차례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