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대학 MT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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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낭만의 시간이던 MT
음주뿐인 무의미한 행사로 변질
문화 체험으로 다시 꽃피웠으면"
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음주뿐인 무의미한 행사로 변질
문화 체험으로 다시 꽃피웠으면"
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모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환갑을 앞둔 만학의 신입생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입성을 두고 몇 가지 추측이 난무했는데, 젊은 날 배우지 못한 한(恨)이나 따지 못한 학위증에 대한 미련 혹은 젊은 사람들과의 교류의 필요성 등등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등단해 활동하는 작가였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학업 지도를 위해 지도교수가 그 이유를 묻자, ‘올드(old)한’ 제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소설 작품이나 영화 작품을 볼 때면 대학시절 MT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도대체 그 대학 MT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꼭 한 번 체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과거의 대학 MT는 고등학교 시절의 억압의 자물쇠가 풀리고 자유와 낭만의 문이 열리는 자리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청춘을 이야기하고 혹은 운이 좋으면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 캠퍼스 커플로 거듭날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 대학 MT는 기억에 남을 만한 낭만적인 체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 MT처럼 생산성 향상이나 판매율 증진 등 구체적인 목적을 둔 것도 아니고, 특정한 프로그램도 없이 그저 선후배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행사로 조금씩 변질되다 보니, MT 시즌만 되면 술에 의한 불상사가 생겨나곤 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의 문예창작과에서는 3년 전부터 MT 대신 ‘현장체험과 채집’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릿속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첫해에는 전남 나주의 천연염색장이 현장 체험장이었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무슨 염색장이냐 하겠지만, 문학 텍스트에 자주 나오는 ‘쪽빛’이 어떤 빛깔인지, 그 쪽빛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장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는지, 실제로 염료 속에 장갑 낀 손을 담그고 생생한 체험을 하면서 글을 쓸 작품 소재도 발굴하고 작가 정신도 배운 셈이다. 이 행사를 위해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담당자를 통해 현지와의 연결이나 지역의 전문 안내자 도움도 받았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고유 장단이 무엇인지 다양한 민속 악기들을 배우러 갔고, 올해는 경기 이천에서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실습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대학의 영상 시나리오과와 영상 비즈니스과에서도 MT 대신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해서 기존 MT가 지녔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는 둘러앉아 낮에 했던 체험에 대해 토론도 하고 선후배 간의 우애도 다지고, 필요하면 다과와 적당한 알코올을 나누기도 한다. 무작정 강요된 소통이 아니라 대학문화다운 ‘새로운 MT’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행사 때의 체험과 채집 자료들은 돌아와서 학생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대학 MT와 마찬가지로, 곧 완연한 봄이 오면 많은 대학들이 축제 시즌에 돌입할 것이다. 최근 대학축제의 두드러진 경향으로는 유명 가수나 연예인을 경쟁적으로 초청한다는 점이다. 대학축제 전체 비용 대비 큰돈이 드는 유명 가수나 연예인을 외부에서 초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학 고유의 행사 콘텐츠가 제대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쌍쌍파티나 대동 줄다리기 등 과거 대학에서만 볼 수 있었던 축제 풍경이 사라진 뒤, 그것을 대신할 대학축제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대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외부 인재를 초청한다든지, 노래 실력이나 연주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가요제를 개최한다든지, 대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대결하여 노래자랑이나 줄다리기를 한다든가, 대학생들만이 기획할 수 있는 조금은 기상천외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대중문화 속에 함몰되지 않고 꿋꿋하게 색다른 꽃을 피울 수 있는 청춘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MT나 축제처럼 놀이문화에 대한 고민도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빛나는 특권이 아닐까.
김다은 <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
“소설 작품이나 영화 작품을 볼 때면 대학시절 MT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도대체 그 대학 MT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꼭 한 번 체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과거의 대학 MT는 고등학교 시절의 억압의 자물쇠가 풀리고 자유와 낭만의 문이 열리는 자리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청춘을 이야기하고 혹은 운이 좋으면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 캠퍼스 커플로 거듭날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 대학 MT는 기억에 남을 만한 낭만적인 체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 MT처럼 생산성 향상이나 판매율 증진 등 구체적인 목적을 둔 것도 아니고, 특정한 프로그램도 없이 그저 선후배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행사로 조금씩 변질되다 보니, MT 시즌만 되면 술에 의한 불상사가 생겨나곤 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의 문예창작과에서는 3년 전부터 MT 대신 ‘현장체험과 채집’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릿속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첫해에는 전남 나주의 천연염색장이 현장 체험장이었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무슨 염색장이냐 하겠지만, 문학 텍스트에 자주 나오는 ‘쪽빛’이 어떤 빛깔인지, 그 쪽빛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장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는지, 실제로 염료 속에 장갑 낀 손을 담그고 생생한 체험을 하면서 글을 쓸 작품 소재도 발굴하고 작가 정신도 배운 셈이다. 이 행사를 위해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담당자를 통해 현지와의 연결이나 지역의 전문 안내자 도움도 받았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고유 장단이 무엇인지 다양한 민속 악기들을 배우러 갔고, 올해는 경기 이천에서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실습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대학의 영상 시나리오과와 영상 비즈니스과에서도 MT 대신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해서 기존 MT가 지녔던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녁에는 둘러앉아 낮에 했던 체험에 대해 토론도 하고 선후배 간의 우애도 다지고, 필요하면 다과와 적당한 알코올을 나누기도 한다. 무작정 강요된 소통이 아니라 대학문화다운 ‘새로운 MT’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행사 때의 체험과 채집 자료들은 돌아와서 학생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재현되고 있다.
대학 MT와 마찬가지로, 곧 완연한 봄이 오면 많은 대학들이 축제 시즌에 돌입할 것이다. 최근 대학축제의 두드러진 경향으로는 유명 가수나 연예인을 경쟁적으로 초청한다는 점이다. 대학축제 전체 비용 대비 큰돈이 드는 유명 가수나 연예인을 외부에서 초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학 고유의 행사 콘텐츠가 제대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쌍쌍파티나 대동 줄다리기 등 과거 대학에서만 볼 수 있었던 축제 풍경이 사라진 뒤, 그것을 대신할 대학축제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대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외부 인재를 초청한다든지, 노래 실력이나 연주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가요제를 개최한다든지, 대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대결하여 노래자랑이나 줄다리기를 한다든가, 대학생들만이 기획할 수 있는 조금은 기상천외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대중문화 속에 함몰되지 않고 꿋꿋하게 색다른 꽃을 피울 수 있는 청춘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MT나 축제처럼 놀이문화에 대한 고민도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빛나는 특권이 아닐까.
김다은 <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