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은 성공한 기업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식품안전 정책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국무총리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민간위원으로서 식품안전 정책 관련 자문과 정책제안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식품안전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남 총괄사장을 서울 수서동 풀무원홀딩스 본사에서 지난 22일 만났다.

▷2011년부터 풀무원재단을 통해 ‘바른 먹거리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바른 식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의 신청을 받아 식품 첨가물 교육, 식재료 맛보고 표현하기 같은 먹거리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식초 대신 빙초산이 함유된 냉면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먹여보면 열 사람 모두 ‘빙초산이 들어있는 냉면이 맛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리 빙초산이 든 냉면이라고 얘기해주면 아무도 그 냉면을 선택하지 않죠. 어릴 때부터 식품을 고를 때 성분이나 영양분 함유량 등 그 식품이 갖고 있는 ‘내재가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어른이 돼서도 올바른 식생활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공 조미료(MSG) 등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MSG가 조금도 첨가되지 않은 음식만 먹는 게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MSG가 얼마나 첨가돼 있느냐’에 있는 겁니다. 과도하면 탈이 나는 거죠. 개인적으로 ‘될 수 있으면 MSG가 첨가돼 있는 식품을 먹는 것을 자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농산물 위주로 제품을 만들려면 비용이 늘어날 텐데요.

“연매출 1조원이 넘는 식품기업이 제품을 만들 때 친환경 농산물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풀무원도 수입산 식재료를 상당량 사용하고 있고요. 요즘은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제조공정, 유통, 포장, 내용물 표시 등의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추세죠.”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식품안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불량식품을 제조하는 사람은 일벌백계(一罰百戒)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라고 봅니다. 맞는 방향입니다. 미국의 경우 식품 사고가 나면 즉시 관련 공장을 폐쇄하는 등 한국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한국 국민들이 식품안전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우리 국민이 민감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옛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정부 기관이 나서서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해 농심의 벤조피렌 사건 때도 그랬지 않았습니까. 한국에서 식품안전과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식약처인데도 국민들은 시민단체가 부풀려 문제 제기하는 것만 들으려고 하고, 식약처 얘기는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실추됐다는 얘기네요.

“국무총리실 식품안전정책위원을 하는 4년 동안 위원들이 줄기차게 정부 관계자들에게 강조한 게 ‘식약처(당시 식약청)로부터 독립된 식품안전 관련 검사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식품안전 관련 규제행정을 집행하는 기관이 식품안전 검사업무를 함께 하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식약처는 식품회사와 한통속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미국 보건후생부 산하의 전문 감시기구인 식품의약국(FDA) 같은 기구가 필요합니다. 식약처가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무총리실, 식약청, 농림축산식품부, 검찰, 경찰 등 범정부 차원의 ‘불량식품 근절 추진단’을 출범시키겠다고 했는데, 합동대책반도 좋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안된다고 봅니다. 독립된 안전 검사기관 설립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안이기도 합니다.”

▷식품회사들이 작년 말 대통령 선거 이후 가격을 잇따라 올린데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식품가격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농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농수축산물 등에 과도하게 부과하고 있는 관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관세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과점 기업이 가격결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요.”

▷풀무원은 2008년에 순수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식품기업 가운데 가장 빨랐는데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올바른 거버넌스(지배구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위스 네슬레를 비롯해 상당수 글로벌 식품기업을 보면 많은 계열사를 지주회사가 거느린 형태로 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죠. 그런데 최근 강화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흐름 속에서 뜻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보여 아쉽습니다.”

▷부작용이라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입니다. 자회사 지분을 많게는 100% 보유한 지주회사 체제에서 계열사들은 각각의 사업부문과 같은 성격을 갖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체를 하나의 회사로 보는 게 맞습니다. 계열사 간 거래를 한 회사 안에서의 거래로 봐야 한다는 얘기죠. 국제회계기준(IFRS) 연결재무제표를 통해 투명하게 회계처리를 하는 지주회사에까지 일률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과세기준을 적용하는 데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합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시행되면 풀무원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규모가 확정돼 봐야 알겠지만,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풀무원이 내야 할 세금 규모는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예요. 도입 취지에 맞춰 법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풀무원은 미국에서 2개 식품기업을 인수하며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기업 스스로 ‘듀 딜리전스’(기업실사) 역량을 갖추는 게 성공의 핵심입니다. 풀무원은 2004년 미국의 와일드우드, 2009년 몬터레이고메이푸드를 각각 인수할 때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세계적인 M&A 전문가들과 파트너를 이뤄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풀무원 자체의 듀 딜리전스 역량이 부족해 인수 후 구조조정을 통해 이 기업들을 회생시키는 데 상당 기간 고생을 했죠. 이제는 그게 다 큰 자산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유통, 식품 등 내수기업의 해외 진출이 화두입니다.

“인류 전쟁사에서 원정군이 성공한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까. 낯설고 물설은 데 가서 고생만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에도 이제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봅니다. 노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갈수록 내수기업들의 성장여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더라도 계속 나가야 해요.”

남승우 총괄사장은

식품업계에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오너 최고경영자(CEO)다. 195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70학번)를 나왔다. 식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기 위해 40대에 대학원에 진학한 만학도다. 1994년 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식품공학 석사 학위를, 1999년에는 같은 대학원에서 식품생물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달에 4~5권의 신간을 읽고 임원들에게도 책을 직접 사서 선물한다.

업무를 처리할 때 법학 전공자로서의 특징이 엿보인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보고를 받을 때 먼저 해당 업무의 특성을 명확히 정의하고, 법적 근거를 꼼꼼히 따지는 일부터 시작할 것을 주문하곤 한다.

휴일이면 동네 만화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는 ‘만화광’이자, 미국 드라마(미드) ‘24시’ 전 시즌을 한꺼번에 몰아본 ‘미드광’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산악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긴다. 2005년부터 미래포럼 공동대표와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CEO클럽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2007년부터 4년간 UNGC 한국협회장을 맡았다.

"기업경영 좌우명은 원경선 원장의 '생명 존중'"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61)과 고교·대학 동기동창인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62)이 서울 압구정동에 유기농 야채가게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을 낸 것은 1981년이었다. 원 의원의 아버지이자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원 의원이 정치를 하기 위해 1987년 회사를 떠난 뒤 남 총괄사장이 회사를 이어받았다. 현재 남 총괄사장의 지분은 57.3%이다.

남 총괄사장은 지난 1월8일 별세한 원 원장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장례위원으로 3일 내내 지켰다. 남 총괄사장은 “원 원장이 유기농 운동을 배운 고(故) 고다니 준이치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일본 애농고등학교의 오쿠다 교장이 발인 날 애도사를 읽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금의 풀무원은 원 원장과는 상관 없는 회사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원 원장도 그랬고 아들인 원 의원도 회사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 원장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그의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아직도 기업 경영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완전히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