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신약으로 글로벌 블록버스터(매출 1000억원)에 도전한다.’

한국제약 116년사에서 단일 신약 1000억원 매출 달성은 어느 회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다. 신약 자체가 드문 국내 제약산업 환경에서 국내외에서 1억달러의 실적을 올리는 것은 여태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도전인 것이다.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척박한 제약환경에서 한 국내 제약사가 ‘토종신약’ 단일품목 1000억원 목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위장약 ‘겔포스’로 널리 알려진 보령제약(사장 최태홍)이다. 이 회사는 20여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고혈압치료제 ‘카나브’(Kanarb)로 2015년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잡고 있다. 카나브는 국내 최초의 고혈압신약으로 세계에서는 8번째로 개발됐다. 고혈압 의약품 시장은 IMS(의약품 리서치) 기준으로 1조3000억원의 국내 시장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42조원 규모에 달하는 ‘매머드급’ 시장이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개발환경이 척박한 국내에서 18년을 공들여 자체 신약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며 “앞으로 보령제약의 역사는 카나브 개발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토종신약 성공모델 시동 건 ‘카나브’

카나브의 초반 출발은 순조롭다. 100억원대 매출에서 주저앉았던 이전까지의 국내 신약들과 달리 매출 성장률이 가파르다. 2011년 3월 국내 첫 발매에 들어간 후 첫해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100% 이상 늘어난 20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 사장은 “오는 5월 카나브 이뇨복합제가 발매되면 매출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며 “올해 카나브의 국내 매출 목표를 500억원으로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시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토종신약의 성공가도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카나브는 혈압을 빨리 떨어뜨리는 우수한 약효 못지않게 뛰어난 안전성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카나브가 국내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규모는 무려 1만4151명. 지금까지 실시된 국내 임상시험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클리닉 데이터’를 확보, 안정성을 검증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임상 결과는 지난 1월 말 SCI(과학기술논문인용 색인)급 저널인 ‘American Journal of Cardiovascular Drugs’에 소개되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보령제약은 카나브를 출시하기까지 18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카나브(성분명 Fimasartan)는 고혈압 치료제 중 같이 많이 쓰이는 ARB(Angiotensin II Receptor Blocker:안지오텐신Ⅱ 수용체 차단제)계열의 고혈압약이다. 혈압 상승의 원인 효소가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협압을 떨어뜨리는 원리의 약물이다. 1992년 후보물질 합성에서부터 시작해 2010년 식약청 허가를 얻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실제로 1997년 말에는 후보물질의 약효 지속시간이 예상보다 짧아 개발을 중단할 뻔 한 적도 있다. 경영진의 신약개발 중단 결정을 앞두고 당시 김상린 연구소장(현 고문)은 ‘3개월만 시간을 달라’며 설득한 끝에 연구를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김 고문은 “내 운을 시험해보겠다는 각오였다. 커다란 무리수를 둔 결정이었지만 그런 절박함이 통했는지 세 가지 구조의 물질을 목표로 진행한 합성 결과에서 기적처럼 후보물질을 찾아냈다”고 회고했다.

◆‘블록버스터’ 해외시장에서 일낸다

카나브의 1차 목표인 단일품목 1000억원 달성 여부는 해외시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령제약이 카나브 해외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 등 최근 생활수준 개선으로 고혈압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머징과 선진시장이 주요 타깃이다. 미국·유럽 등은 직접 공략하는 것보다 현지 업체에 라이선스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유럽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위해서는 평균 1000억~1500억원가량의 추가 임상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특허 만료기간을 감안할 때 현지 파트너십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카나브는 2011년 10월 멕시코 등 중남미 13개국 수출을 시작으로 지난해 브라질, 올초 러시아 현지 제약사와 잇따라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로열티를 받고 현지업체에 특허를 넘기는 ‘라이선스 아웃’ 방식으로 총 8860만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보령제약은 2015년부터 이들 국가에서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5년을 카나브 매출 1000억원 원년으로 잡고 있는 이유다.

올해 해외시장의 관건은 중국 진출이 될 전망이다. 제약시장 규모가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에서 상반기 내에 유력 해외 파트너사를 선정해 ‘라이선스 아웃’ 방식으로 진출하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중국 제약시장이 워낙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보니 다각적인 진출 방안을 두고 고민 중”이라며 “중국 진출이 확정되면 이전 수출실적을 뛰어넘는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