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들고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감옥을 탈출하면 그동안 내가 말해왔던 것이 뭐가 되느냐”는 말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친(親)알렉산더파 숙청 바람 속에 사형을 맞게 됐다. 하지만 그는 도망쳤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두 번이나 철학에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

누구나 물러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대개는 아쉬움이나 회한이지만 자기합리화나 남은 자들에 대한 경고도 적지 않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란 호칭보다 위에 있는 유일한 호칭, 즉 시민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통령의 짐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런 자세가 ‘사상 최고의 전직 대통령’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맥아더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명언이지만, 자신을 해임한 대통령에 대한 독설로도 들린다.

짧아서 더 기억에 남는 퇴임사도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를 중단한다. 오늘 정오부터”가 전부다. 묘비명도 ‘샤를 드골, 1890~0000’으로 해달라고 유언장에 남겼다. 체코의 하벨 대통령도 울림이 있었다. “제가 실망시킨 국민, 저를 미워했던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우리나라에서도 퇴임사나 사퇴의 변이 종종 화제가 된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감위원장에서 물러날 당시 ‘눈 덮인 산길 함부로 밟지 마라’는 서산대사의 선시를 인용했다. 자화자찬이란 비판도 받았다. “소문이 진실보다 더 그럴 듯하다”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사퇴의 변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불명예 퇴진의 변은 주로 ‘심려를 끼쳐 죄송’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그렇게 딱 두 문장이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부덕의 소치”라면서도 청문회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제 이름과 관직이 거론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새 정부 장·차관 중 여섯 번째로 한만수 공정위원장 후보자가 어제 사퇴했다. 그의 사퇴의 변은 “공정위원장 수행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 국회 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채 장시간이 경과하고 있어” 물러난다는 것이다. 본인 비자금 탓인데 마치 남 얘기하는 듯한 궤변으로 들린다. 사람이 꼿꼿하면 그림자가 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의 사퇴의 변이 바로 묘비명이다.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걸레스님 중광의 “에이 괜히 왔다”는 웬만한 중학생도 알 정도다. 그런데 박장대소할 묘비명 하나. 방송인 김미화 씨가 미리 써뒀다는 묘비명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