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예상했던 대로 간다. 새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없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당장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 관장 업무내용에서 공기업 민영화 정책 수립 및 조정이라든가, 민영화 추진 같은 단어 자체가 아예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 공기업의 재무건전성 제고를 위한 계획 수립이 들어갔다.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공기업 선진화’에서 부채 감축, 책임경영 강화를 뜻하는 ‘공기업 합리화’로 정책 기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기존 계획은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기업 판치면 경제는 황폐화

그래도 설마했던 일이었다. 대선 공약은 물론이고, 140개 국정과제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공기업 민영화였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손을 털겠다고 나오니 새삼 놀랍다. MB정부가 목표를 정해놓고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인 결과 성과는 없으면서 갈등만 빚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 민영화를 재검토하겠다거나, 국토교통부가 제2 코레일을 만들겠다고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 다 같은 맥락이다. 벌써 정책금융공사 우리금융 등의 민영화와 대우조선해양 STX팬오션 등의 매각이 틀렸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공기업이 버티고 있는 영역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없는 무풍지대다. 방만경영, 비대화는 필연적이다. 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어떻게든 사업영역을 넓히려 드는 공기업의 속성 탓이다. 그래서 공기업이 살찔수록 민간부문은 위축되고 경제는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민영화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국가 인프라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공기업은 언젠가 소멸하기 마련이다. 공기업 비중이 클수록 후진적이란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역대정권마다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인 것도 그래서다. DJ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포스코 KT KT&G 등을 잇따라 민영화시켰다. MB정부 때는 공룡 공기업인 주공과 토공이 통합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탄생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민영화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규 민간기업을 적극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공기업을 견제했다.

창조는 어디에서 만들건가

아직도 공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28개 회원국들의 공기업 가치를 비교한 결과 한국이 1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공기업 경제 비중에서도 한국은 16.8%로 평균치의 1.7배나 됐다.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일부 고비용 고복지 유럽국가와 체코 폴란드와 같이 시장경제로 이행한 지 얼마 안되는 나라 정도만 한국보다 높았다. 독일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의 공공부문 의존도는 5% 이하였다. 지금 같은 구조로 선진국으로 간다는 것은 요원한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기피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MB정부 때 공항 면세점 등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을 놓고 비판이 끊이질 않았던 터다. 그렇지만 반발이 무서워서, 지지도가 떨어질까봐 안 하겠다는 식은 있을 수 없다. 저항이 없을 수 없는 게 민영화다. 가뜩이나 0%대의 저성장에 잠재성장률은 3% 밑으로 추락 중이다. 과거 저성장에 고민하던 영국이나 브라질, 칠레 페루 같은 남미국가도 민영화에서 길을 찾았다. 공공부문에서 창의력과 혁신이 나올 리 없다. 더욱이 새 정부가 인터넷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등에서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창조경제를 만든다면서 공기업 천국이 될 판이다. 창조를 어디에서 만들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갈 길을 버리고 안 되는 길로 왜 자꾸 가려는 것인지.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