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군 한국이야말로 개발도상국들에 다양한 개발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부각시킬 생각입니다.”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에 도전장을 던진 박태호 외교부 경제통상대사(사진)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다방면으로 쌓아온 국제통상 경험이 WTO 내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그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국제통상학회장, 무역위원회 위원장, 통상교섭본부장 등 지난 30년간 ‘통상 외길’을 걸어왔다.

박 대사는 브라질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가나 등 9개국 후보들과 경쟁하고 있다. 4명 안팎의 후보가 나왔던 과거 선거전에 비해 후보가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는 “중남미 지역에서만 브라질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3개국에서 후보를 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며 “이들 국가는 현 사무총장인 파스칼 라미가 선진국(프랑스) 출신인 만큼 차기 총장은 개도국에서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WTO는 세계 무역분쟁을 중재하는 국제기구로 1995년 출범했다. 무역분쟁 조정 외에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 규제 등 막강한 법적 권한과 구속력을 갖고 있다. 사무총장 임기는 4년이다.

박 대사는 지난달 25일 이후 한 달여간 17개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선거의 첫 번째 분수령은 다음달 초 159개 회원국 대표들이 비밀 투표를 통해 9명의 후보 중 4명을 걸러내는 1차 선거라운드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아세안,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 후보들과 달리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지역적 기반이 미흡한 게 약점이다. 그는 “어려운 싸움이지만 정부가 4명의 외교 특사를 동원해 다각도로 지원해주고 있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초 1차 라운드가 끝나면 5명의 후보를 2명으로 줄이는 2차 라운드, 2명이 경합하는 3차 라운드를 거쳐 5월 말께 후보자가 최종 선정된다.

박 대사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10년 넘게 표류하면서 WTO의 위상도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면 회원국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연내 DDA의 성과를 일부라도 도출하는 데 힘쓰고 그린에너지, 식량안보 등 새로운 국제 이슈 해결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사가 WTO 사무총장에 뽑히면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국제기구 수장에 오르게 된다. 지난해 세계은행 수장을 맡은 김용 총재는 미국 국적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