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B지구에 자리잡은 대상내구 시험실에 들어서자 거미처럼 생긴 장비 위에서 K9 수출모델이 춤추듯 요동치고 있었다. 장비 이름은 ‘로드 시뮬레이터’. 네 바퀴 부위에 특수 장치를 부착, 전후·좌우·상하 등 세 방향으로 힘을 가해 차량이 주행 중 받는 충격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장비다.

연구팀은 프로토 차량을 꼬박 한 달간 매일 장비 위에 올려 혹독한 테스트를 거친 뒤 출고된 지 수십년 이상 된 상태로 만들어 차량의 내구품질을 점검한다. 성대운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내구기술팀)은 “차를 30만㎞까지 타도 끄떡없는 내구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내구성능개발실은 특이한 곳이다. 디자인·설계부문이 차를 보기 좋고 아름답게 만드는 곳이라면 이곳은 차를 망가뜨리는 게 주된 업무다. 부식시험동에선 차량을 4~5개월간 소금기를 머금은 물과 고온 다습한 환경, 강한 햇볕에 노출시켜 출고된 지 12년가량 된 차와 같은 상태로 만든다. 그런 다음 차를 완전 분해해 어떤 부위에 부식이 생기는지를 검사한다. 주행시험장에선 화강암 벽돌로 된 유럽형 도로(벨지안로) 주행, 웅덩이·과속방지턱 등 국도와 같은 조건을 갖춘 크로스컨트리로 주행 등을 수개월간 실시한 뒤 차량 이상 여부를 점검한다. 미국 모하비사막, 알래스카, 유럽, 중국 등 전 세계로 보내 실제 도로 주행을 거친다. 와이퍼·트렁크·도어를 수만 번 이상 열고 닫는 테스트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신차를 양산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의 품질 경쟁력을 좌우하는 최후의 관문인 셈이다.

정원욱 내구성능개발실장은 “프로토 차량이 들어오면 나사와 볼트 하나까지 수천 가지가 넘는 항목의 내구성능을 검사한다”며 “최대한 혹독하게 조사·분석할수록 좋은 품질의 차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가 내구성능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내구가 곧 차량 품질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기아차가 ‘저가차’로 인식됐던 이유도 오래 타면 잔고장이 발생하는 내구성능 탓이다.

현대·기아차의 내구성능은 크게 개선됐다. 매년 발표되는 미국 JD파워 내구품질조사(VDS)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게 내구성능개발실의 자평. 정 실장은 “JD파워의 VDS에서 현대차 순위가 작년 4위에서 올해 14위로 떨어졌다”며 “내비게이션, 핸즈프리 등 정보기술(IT)을 많이 추가하면서 생긴 문제지만, 단 하나의 문제점도 없도록 철저하게 테스트하라는 게 정몽구 회장의 지시”라고 말했다.

내구성능개발실이 공을 들이는 분야는 ‘감성내구’다. 정 회장이 2011년 7월 경영전략회의에서 “고장이 안 나는 차로는 부족하다. 감성적 만족을 주는 차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부터 감성내구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감성내구는 고장·파손 등 결함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이 오감으로 느끼는 품질을 높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차를 오래 타면 가죽시트에 주름이 잡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실내 바람소리나 잡음이 커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 등이 감성내구의 핵심 포인트다. 가솔린 차량에 비해 운전대 떨림 현상이 심한 디젤 중고 차량의 문제도 오랜 연구 끝에 해결했다.

차량 에어컨 냄새를 없애는 과제도 추진 중이다. 3년 이상 타면 통상 에어컨에 냄새가 나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에어컨 필터에 생기는 미생물까지 분석한다. 민병훈 가속내구개발팀장은 “서울대 측과 미생물이 냄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공동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감성내구 강화를 통해 2017년까지 JD파워 VDS점수를 100점 이내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VDS는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이 좋은 것을 의미한다. 올해 점수(현대차 141점, 기아차 140점)보다 40점 이상 낮춰 전체 자동차업체 중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내구성능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화성=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