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군단(ROTC) 1기로 임관한 것이 1963년, 꼭 50년 전이다. 전방으로 떠나는 우리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선배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하고 병사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투철했다. 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군에서, 그것도 최전방 고지 관측소에서 병영생활을 통해 체득했다. 이른바 인애(仁愛)의 정신이었다.

그해 6월, 육군 제8사단 75포병대대에 배치됐다. 군용차는 나를 경기도 연천군 대광리 깊은 산골로 데려갔다. 차에서 내려 7~8㎞ 더 걸어가니 부대가 나왔다. 해는 저물었고, 모두 퇴근한 부대에서 나온 장교 한 분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어갔다. 병영생활의 시작이었다.

첫 임무는 포병대 최전방 관측이었다. 적진의 이상 징후를 일지에 쓰고 보고하는 일이었다. 하루종일 대남방송이 울려 퍼지던 그 시절, 매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그마한 내 실수가 장교의 명예는 물론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고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중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것이었다. 전방 부대의 좁은 공간에서 몇 달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다 보니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게 마련. 관리에 실패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군이라 해도 명령만으로 모든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득 사단장의 훈시가 떠올랐다. “전방에 가서 근무할 때 상사에게서 불신을 받더라고 부하한테만큼은 축복받는 장교가 되라.”

당시 외부에서 온 편지를 정기적으로 병사들에게 전달했다. 보통 편지를 받으면 기쁜 마음에 바로 읽게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병사가 있었다. 글은 모르는데 자존심 때문에 전우들에게 읽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저녁에 그 병사를 몰래 불러 편지를 읽어줬다. 처음에는 창피해 하던 그 병사는 나중엔 편지를 읽어 달라고 찾아오고 답장을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기강을 강조하는 군이지만 명령 말고도 사람을 움직이는 관리법이 있다는 것을. 바로 인애였다. 일반적으로 군은 명령과 통솔만으로 움직이는 곳으로 여겨진다. 내가 느낀 것은 달랐다. 충성심은 명령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지휘관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부모나 형처럼 병사들을 보살펴주는 덕(德)의 소중함이 있다.


군대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집단이다. 인애를 기반으로 생활하다 보면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는 상명하복 관계를 넘어 진정한 충성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애를 통한 신뢰’는 경영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 경영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항상 쾌적한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고 공장 역시 불편함이 없도록 깨끗하고 정리된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제품은 좋은 환경에서 나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지금까지 군에서 얻은 인애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ROTC 모임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 왔다. 2·3대 ROTC 중앙회장을 맡아 학군단 출신들이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아직도 ‘ROTCian’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복무 시절 터득한 인애의 정신 속에서 후배들과 교류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군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사회활동도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동량으로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