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은 조선 중기의 한 획을 그은 지식인이다. 이른바 사림 정치가 시작되는 명종 선조 간의 앞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평생 재야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가 끼친 영향은 작지 않았다. 정치가 지위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1553년 퇴계 이황이 정치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1555년 명종이 그를 단성 현감에 제수했으나 그 역시 거절했다. 이때 거절 사유를 밝힌 것인 바로 ‘을묘사직소’다. 아래 내용은 그 두 번째 대목이다.

“전하의 국사는 이미 글렀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벌써 가버렸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를 벌레가 백년 동안 속을 갉아먹어서 고액이 이미 말라 버린 채, 멍하니 질풍 폭우에 쓰러질 날만 기다린 지가 오래된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 충성스러운 신하와 근실한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형세가 기울어서 지탱할 수 없으며, 사방을 둘러봐도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식은 국가의 상황에 대해 말한다. 국세가 기울어져 망할 지경이 됐다. 오랫동안 벌레 먹은 고목처럼 겉은 멀쩡하지만, 비바람 한 번이면 단박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린 것을 아는 까닭에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조식은 이렇게 글을 잇는다.

“이런데도 하급 관료는 아래에서 희희낙락하며 주색잡기에 여념 없고 고관대작은 위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직 뇌물 챙겨 재산만 불리니, 뱃속은 썩어가는데도 약을 쓰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 있는 신하는 궁궐에다 사람을 심어놓고 마치 깊은 못 속의 용처럼 서리서리 얽혀 있고, 지방의 신하들은 백성에게 가렴주구를 해 그 자취가 온 들판에 낭자하니, 가죽이 모두 벗겨지면 털도 붙을 곳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이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한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며, 잠 못 이루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억누른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었습니다.”

행정의 주체인 관료의 부패상을 말한다. 하급 관리는 주색에 빠져 있고, 고급 관료는 뇌물에 골몰한다. 병은 깊은데 고칠 생각은 없다.

“자전께서는 사려가 깊으시나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며, 전하께서는 어리시니 다만 선왕의 한 고아일 뿐입니다. 백 천 가지 하늘의 재앙과 억만 갈래 백성의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시며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개천은 마르고 좁쌀비 떨어지니 이 조짐이 무엇이며, 노래 슬프고 흰 옷 입으니 형상 이미 드러났습니다.”

조식은 말한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 결과이며, 억만 갈래로 갈라진 민심은 왕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당시 왕인 명종과 실권을 쥔 문정왕후를 향한 직설은 정치문제로 비화했지만 결국 기개 있는 재야의 선비가 당대의 권력자인 모후를 향해 불경한 말을 거침없이 한 정도로 양해됐다. 하지만 좀 더 곱씹어 보면 그 말의 함의가 간단치 않다. 백성 없이는 왕도 없다는 조식의 말은 직선적이고 간명하다. 왕과 백성은 공생 관계라는 뜻이다.

최근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한 말이 ‘1 대 99’다. 한때는 ‘2 대 8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1 대 99가 나왔다. 상위 1%가 공동체의 재화를 과점한 현상을 표현한 이 말은 ‘1’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99’를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나쁘다. 그런데도 ‘99’에서 이런 말이 더욱 많이 쓰이는 이유는 ‘99’를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를 정당한 경쟁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의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백성을 수탈의 대상으로만 보고 제 가죽을 벗겨내던 조식 시대의 위정자들과 능력만 있으면 필요에 상관없이 사회의 재화를 독점해도 좋다고 경쟁을 부추기는 지금의 우리가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조식은 ‘1’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문제점을 분명하고도 직선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데 반해, 지금의 ‘1’이 과연 그런 공생적 관점을 갖고는 있는지 참으로 궁금할 뿐이다.

서정문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