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표시장치(LCD) 장비를 생산하는 탑엔지니어링은 일본 제품에 의존해온 LCD 유리기판 절단 설비를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체 엔지니어들로 구성한 태스크포스팀이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시험 설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남은 것은 실제 생산라인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작업. 납품처인 LG디스플레이에 SOS를 쳤다.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LG디스플레이 측은 파주 공장에서 테스트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LG디스플레이의 노련한 기술자들도 투입됐다.

결과는 대성공. 파주 생산라인에 탑엔지니어링이 생산한 절단장치가 본격적으로 설치됐다. 국산화 노력을 인정받아 탑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발명의 날에 특허청으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협력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주요 기업이 상생을 모토로 내걸고 동반성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계약을 발주하는 회사와 수주사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대등한 입장에서 힘을 합치는 작업이다. 기업들은 나눔 경영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체감하고 있다. 소외 이웃과 약자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손 잡고 1등기업으로 가자”

주요 대기업은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원하거나 마케팅 기법을 전수하는 등 경쟁력을 키워주는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창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청년층과 저소득층 창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최근 마련했다. 5년 동안 3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사회적 기업과 소상공인 창업을 돕겠다는 목표다. 오디션 형식의 창업지원책 등을 통해 2017년까지 25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 2월 삼성전자가 14개 협력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한 것은 나눔 성장의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는 이들에게 기술과 자금 등을 대폭 지원해 2015년까지 부문별로 세계 시장 점유율 5위권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1년 벤처파트너스 프로그램을 도입한 포스코의 시도도 눈에 띈다. 신사업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해 성장 여력이 없는 기업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작년 말까지 22개의 벤처기업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포스코가 42억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도 참여해 총 73억원이 이들에게 전달됐다. 22개사의 직원 수도 15% 늘었다.

에너지 부문 등에서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SK는 협력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 환경사업에 진출할 중소기업을 모아 동반 진출 협약을 맺었다.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동반성장아카데미를 열어 협력사 중견간부들에게 해외연수도 시켜준다.

협력사에 신기술을 넘겨준 사례도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월 밀 껍질을 섞어 친환경 비닐봉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중소 포장기업에 이전했다. 뚜레쥬르 매장에서 사용하는 봉투를 이 제품으로 대체해 안정적인 납품처도 제공했다.


다채로운 사회공헌 활동도 주목

과거 일회성 지원에 치중했던 주요 기업의 사회환원 제도는 약자와 소외계층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북한이탈 주민이 채용 때 지원하면 5%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생산기술직은 1% 이상을 이들로 채울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지원하면 전원에게 교육과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해 기술인으로 양성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사업장이 있는 경남 창원시와 협약을 맺고 지자체의 각종 정책사업을 지원한다. 창원과학고와 마이스터고, 전문대 등 지역 내 학교와 공동으로 맞춤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두산중공업은 현지에서 담수설비 지원과 장학사업 등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훈훈한 미담도 있다. CJ대한통운은 최근 협력사 택배기사들의 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택배기사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모두 택배업계 최초다. CJ그룹 관계자는 “정규인력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을 위한 복지도 추가해 상생모델의 개념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