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마체푸츠레, 칸첸중가, 판딤 등 히말라야 산맥의 험준한 봉우리들이 사람 얼굴처럼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게 신기했어요. 비록 거칠지만 오래전에 잃었던 고향 같은 포근함도 있고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히말라야가 주는 감동에 새삼 눈물이 나더군요. 거대한 자연을 통해 인간은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최근 2년 동안 히말라야의 매력에 푹 빠져 변화무쌍한 거봉들을 그려 온 재미화가 최동열 씨(62). 3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히말라야의 깊숙한 산속에서 스스로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며 “자연 속에서 개인의 공간은 얼마 만큼인지, 개인이 자연과 함께 가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을 통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갈등을 작품에 풀어냈다”고 말했다.

최씨의 히말라야 작업에는 극적인 자신의 인생경험이 잘 녹아 있다. 그는 경기중 졸업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5세에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하고 이듬해 해병대에 자원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청년기를 치열하게 보냈다.

유복한 환경을 마다하고 1970년대 중반 22세에 미국으로 무작정 떠난 그는 ‘글쟁이’의 꿈을 키우며 태권도 사범, 막노동자, 바텐더 등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미술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1977년 아내 로렌스를 만나면서였다. 그림이 글보다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고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히말라야 작품들은 이처럼 치열한 삶 속에서 태어났다. 단순히 웅장한 자연을 담아낸 산수화에서 끝나지 않고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 마체푸츠레봉을 바라보는 여인의 누드를 그려넣어 관람객이 작품 속 인물과 함께 히말라야를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인(인간내면)과 산(세상)을 조화롭게 병치시켜 삶의 이중성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흰색과 원색을 대비시킨 화면은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굳이 히말라야 풍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2011년 봄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산맥을 돌아다니다 베이스캠프인 촘롱마을(2100m)에 짐을 풀고 작업할 때였어요. 밤새 눈보라 치는 동굴의 암자 침실에서 자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내 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의 얼굴들이 마치 신령님처럼 다가오더군요. 남은 삶을 히말라야의 얼굴을 그리기로 다짐했죠.”

‘신들의 거주지-안나푸르나, 칸첸중가’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히말라야를 관조하듯 그린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6일까지. 개인전과 함께 미학 에세이집 《아름다움은 왜》도 출간했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