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 주문자는 지체 높고 돈 많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며 화가에게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화가의 자율성은 아주 미미했다. 게다가 화가 역시 남자였다.

이 점은 그림 속의 여성상을 묘사할 때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친다. 남성 주문자들이 가장 많이 주문한 여성상은 누드의 비너스였다. 그러나 말이 비너스였지 그것은 신화의 포장을 겹겹이 씌운 남성의 내밀한 욕망의 대상이었다. 기독교의 엄격한 윤리가 구체적인 여인의 누드화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옷 벗은 마하’도 그런 남성이 바라본 여성 누드상의 전형이다. 당시 총리였던 고도이가 자기 방에 걸어 놓고 은밀히 감상하기 위해 주문한 이 작품은 관능성이라는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상이다.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은 그와 아주 절친한 소수의 남자들뿐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 작품은 신화의 가면을 벗고 세속의 여인을 적나라하게 그린 최초의 누드상이라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갖는다.

만약 여성이 전통사회의 주도권을 잡았다면, 또 화가가 여자였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명화 속의 여성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