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루 세금 징수 맞지만 장외 큰손들 시장 이탈
신원 노출될까 부담
벤처캐피털도 타격…투자금 회수 어려워져
지금까지 장외에서 주식을 거래할 경우 그 내역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거래세와 양도소득세, 증여세 등을 내지 않는 투자자도 많았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거래세법과 시행령을 바꿨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새 정부 취지와 부합하는 조치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세금 부담과 신분 노출을 꺼리는 ‘큰손’들이 장외시장을 떠나면서 거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장외시장에서 보유 주식을 팔아 투자금의 일정 부분을 회수해온 벤처캐피털은 회수 창구 하나가 사라졌다.
○양도차익의 10% 세금
정부가 증권거래세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주식 장외거래에 따른 각종 세금을 탈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주식을 장외에서 거래하면 거래대금의 0.5%를 거래세로, 양도차익의 10%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거래내역이 잘 드러나지 않아 상당수 투자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간혹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장외에서 주식을 증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된 증권거래세법과 시행령은 증권사로 하여금 거래자 인적사항, 거래 주식, 거래일자 등을 분기별로 두 달 이내에 관할 세무서장에게 제출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1분기 거래내역은 5월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세원이 노출되지 않는 고소득층과 주식 전문 거래 중개인들을 적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금융소득종합세 등 다른 세금도 부과할 수 있다. 장외시장 큰손들이 시장을 떠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장외시장 큰손으로 통하는 김모씨(55)는 “2월 중순에 거래내역이 국세청에 통보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 곧바로 주식 거래를 중단했다”며 “기본적으로 장외 중개인들은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말했다.
장외 주식정보 업체인 프리스닥의 정인식 대표는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은 1분기 거래내역부터 국세청에 통보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며 “관련 내용이 알려지면 시장이 받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내다봤다.
○벤처 생태계 한 축 허물어져
증권거래세 관련 법령 개정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벤처캐피털 업계다. 상당수 벤처캐피털은 창업 초기 기업에 자금을 투자한 뒤 30% 안팎을 장외시장에서, 나머지를 기업공개(IPO) 이후 장내시장에서 회수해왔다. 장외시장이 마비되면서 투자금의 30%를 회수하는 방법이 막막해졌다.
한 벤처캐피털 투자본부장은 “장외 비상장 주식 시장은 프리 IPO 시장 역할을 하며 사전에 주식 가격을 먼저 형성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며 “적절한 대안 없이 장외 큰손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투자 회수 일정과 방식을 찾는 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말했다. 다른 벤처캐피털 관계자도 “장외 큰손들은 소액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주는 중개 및 인수(언더라이팅) 기능과 IPO 때 주식 물량 부담을 낮춰주는 역할 등을 맡아왔다”며 “이들의 역할을 대신할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좌동욱/오동혁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