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정부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으며 통화정책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물론 정치권까지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데 대한 나름의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2일 ‘재정지출의 성장에 대한 영향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최진호 한은 계량모형부 과장 등은 1986~2011년 재정지출 효과 분석을 통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1원 늘리면 해당 분기 국내총생산(GDP)이 53전, 투입 효과가 극대화되는 3분기나 4분기에 63전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재정지출 투입에 따른 GDP 증가액인 지출 승수를 계산한 결과다.

다만 지출 승수는 2000년 이후 하락 추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이전에는 재정지출을 시작한 분기에 GDP가 76전, 효과가 가장 큰 분기에는 78전 늘어났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각각 27전, 44전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재정지출이 10조원 늘어날 경우 투입 개시 시점(분기) GDP는 2조7000억원(성장률 0.09%포인트), 효과가 집중되는 3분기나 4분기 중에는 4조4000억원(0.15%포인트)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과장은 “경기 위축기에는 지출 승수가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아직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여유가 있어 경기상황 악화 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 같은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재정확대가 금리인하보다 경기부양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변하기 위한 측면도 작용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 전문가는 “현 상황이 금리보다는 재정정책의 효과가 높은 시점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면서 금리정책에 나름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1일엔 경기회복을 위해 통화정책 이외에 ‘산업별 특이요인’에 초점을 맞춘 미시적 정책대응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한은 노조는 이날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이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까지 중앙은행에 대놓고 금리인하 내지는 확장적 금융정책 시행을 압박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이어 “통화정책은 시장 참여자나 정책 당국자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된다”며 “금리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환/김주완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