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5시. 현대로템 해외영업팀의 시선은 온통 해외 착신 전화기에 쏠려 있었다. 인도 델리지하철공사(DMRC)에서 발주한 지하철 3기 전동차 사업자가 이날 발표되기 때문이다. DMRC가 발주한 물량은 전동차 636량. 인도에서 나온 물량 중 최대 규모다.

당초 수주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인도 전동차 시장을 장악해온 캐나다 봄바르디에, 프랑스 알스톰이 가격을 후려쳐 입찰했다는 소문이 나돈 탓이다. 오후 6시 현대로템 해외영업팀 전화벨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현대로템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습니다.” DMRC가 낙찰통지서(LOA)를 발송했다고 알려온 전화였다. 환호성이 터졌다.

현대로템이 델리 지하철공사에서 발주한 1조원 상당의 전동차 납품 사업을 따냈다. 인도 전동차 발주 규모로는 사상 최대이며 현대로템 수주 규모로도 역대 최대다. 무엇보다 봄바르디에, 알스톰, 독일 지멘스 등 전동차 업계 ‘빅3’와의 경쟁 끝에 따낸 일감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현대로템의 품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몽구 회장의 주문이 결실을 맺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로템, 인도 점유율 1위로

현대로템이 이날 따낸 계약은 DMRC가 발주한 1조원 규모의 3기 지하철 전동차 납품 건이다. DMRC는 2017년까지 델리 시내 지하철 7·8호선에 투입할 전동차 636량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발주했다. 인도 전동차 발주 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봄바르디에, 알스톰, 지멘스 등 전동차 업계 글로벌 ‘빅3’와 함께 현대로템, 스페인 카프, 일본 가와사키중공업 등이 뛰어들었다.

처음엔 봄바르디에와 알스톰 중 한 곳이 선정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봄바르디에와 알스톰은 오랜 기간 인도 정부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3300억원 규모의 인도 하이드라바드 전동차를 수주한 현대로템도 ‘다크호스’ 정도로 평가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DMRC는 최종 사업자로 현대로템을 선택했다. DMRC는 가격 조건 외에 전력 소비효율 등 기술 항목에서 현대로템에 최고점을 줬다. 전동차 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로템의 가격 경쟁력이 아닌 기술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현대로템은 2001년 델리 메트로 전동차 280량을 시작으로 10여년간 총 1283량의 인도 내 전동차 납품 건을 따냈다. 발주량 기준 점유율은 60% 이상으로, 봄바르디에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MK ‘품질 우선주의’ 빛 발해

현대로템이 글로벌 전동차 시장에서 강자로 부상한 것은 정 회장의 품질 중시 전략에 힘입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은 2004년 현대로템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속철도를 수주했을 때부터 철도차량 부문 경쟁력을 높일 것을 주문해왔다.

2011년 현대로템이 참여한 KTX산천호에 불량 문제가 발생한 직후에는 “철도 차량 품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하고 품질 강화를 강조했다. 이후 현대로템은 품질 담당 인력을 대폭 늘리고 협력사를 포함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대로템은 이에 따라 장기 경영목표를 수정했다. 2017년까지 철도차량 세계시장 점유율을 5%로 끌어올려 ‘글로벌 빅5’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철도사업을 자동차에 버금가는 글로벌 캐시카우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