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대기업, 해외 탈세 단속 강화
정부가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지난해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안도라, 지브롤터 등 조세피난처 3곳과 국내 거주자의 금융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조세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조세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한 조세피난처는 모두 14개국에서 17개국으로 늘었다. 최근 정부가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고소득층과 대기업 등의 해외 은닉 재산을 발굴하는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조세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한 17개 조세피난처 중 쿡아일랜드와 마셜제도는 이미 협정이 발효됐다. 나머지 15개국은 현재 가서명이나 서명 단계로 협정 발효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는 또 산마리노, 모리셔스 등 다른 조세피난처와도 조세정보 교환 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정부는 국내 세법 집행에 필요한 각종 조세 정보를 상대방 국가에 요청할 수 있다. 또 필요한 경우 정부가 상대방 국가의 협조 아래 직접 회계장부를 조사하거나 상대방 국가가 세무조사에 나서도록 요청할 수 있다. 상대방 국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같은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정부가 협정 상대국에 요청할 수 있는 조세 정보는 크게 네 가지다. 사업자 등록에 관한 사항(개인이나 기업, 신탁의 존재 여부, 등기부에 기재된 대표자, 소재지, 설립·폐업일, 자본금 등), 주주 등 기업의 소유권 정보, 기업이 수행한 특정 거래와 관련된 회계장부, 개인이나 기업의 금융거래 정보 등이다.

특히 금융거래 정보의 경우 국내 거주자가 역외 금융계좌를 통해 자산이나 소득을 빼돌린 혐의를 적발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류광준 재정부 국제조세협력과장은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재산을 해외에 은닉한 혐의가 있다는 의심이 들 때 조세정보 교환 협정에 따라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며 “해외 탈세를 적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조세피난처와 조세정보 교환 협정 체결을 추진해왔다. 조세피난처가 해외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지만 조세정보 교환을 포함해 국가 간 과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조세협약 가입을 꺼리자 그보다 수위는 낮지만 해외 은닉 재산 조사에 필요한 조세정보 교환 협정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

한편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최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내부 기록 수백만건을 입수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전 세계 부자 수천명의 신상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국세청은 이 명단에 한국인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탈세 등 위법 혐의가 확인되면 철저히 추징할 방침이다.

현재 버진아일랜드의 경우 내국인이 투자한 기업이 80여곳에 달하고 과거 국세청의 역외 탈세 조사 과정에서 이곳을 이용한 탈세 사례가 적발된 적도 있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최근 3년간 해외에서 소득이 발생한 10만여명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신고 여부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해외 탈세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