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가족의 꽃'이 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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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아빠, 아빠 여기 좀 봐. 응.” 옆에서 딸아이가 연신 보채지만 아버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한 번쯤 야단을 칠 법도 하지만 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 채 이 난감한 상황을 ‘이겨내고’ 있다. 어린이는 집안의 중심적 존재이기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어린이는 잊힌 존재였다. 어른의 부속물로 여겨졌다. 초상화 속에서도 한쪽 구석을 차지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린이가 집안의 꽃이 된 것은 18세기에 가족의 중요성이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가장 중심의 수직적 가족체계가 무너지고 개개 구성원의 역할과 구성원 간의 화합을 중시하는 수평적 가족주의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영국 화가 윌리엄 호어(1707년께~1792)가 그린 ‘크리스토퍼 앤스티와 그의 딸 메리’에는 그런 시대적인 변화가 잘 드러나 있다. 학계의 부조리를 비판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쫓겨난 정의파 지식인 앤스티도 그런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으리라. 재롱을 떠는 딸아이 앞에서 그래도 가장의 위엄을 지키려고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 속에서 변혁기 가장의 고뇌가 읽혀진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