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조정 앞둔 산업은행 > 정부가 산은금융그룹에서 대우증권 등을 떼어내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정책금융기관 구조 개편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전경.  /한경DB
< 구조조정 앞둔 산업은행 > 정부가 산은금융그룹에서 대우증권 등을 떼어내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정책금융기관 구조 개편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전경. /한경DB
정부가 산은금융지주 민영화 방안을 백지화한 데 이어 자회사인 KDB대우증권과 KDB생명 등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산업은행을 다시 본연의 정책금융기관으로 되돌리겠다는 걸 의미한다. 증권사와 보험사 등 민간영역을 떼어 파는 대신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예전처럼 상시적 금융위기에 대비하는 역할을 맡기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산은금융의 자회사 매각을 통해 4조원가량을 조달, 창조경제 지원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정책금융기관 재편 논의도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산은지주, 금융자회사 매각] 자산운용·캐피탈도 팔 듯…'정책금융' 기능만 남긴다

○정책금융 뺀 민간 영역은 다 판다

정부는 산은금융의 민영화뿐만 아니라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기업공개(IPO)도 추진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주요 계열사인 대우증권과 KDB생명은 매각하기로 했다. 정책금융기관과 어울리지 않는 계열사를 떼어 내겠다는 취지에서다. 산은은 투자은행(IB) 관련 조직을 분리해 대우증권과 묶어 파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에서 회사채 발행과 인수·합병(M&A) 자문 업무 등을 맡고 있는 자본시장본부 등을 대우증권과 묶어 대형 IB를 설립한 뒤 시장에 내다팔 경우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우증권과 KDB생명 이외의 비은행 자회사를 파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굳이 정책금융과 관계없는 회사를 거느리고 있을 필요가 없는 데다 시장에서 민간 회사들과의 마찰을 피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리스 사업을 하는 KDB캐피탈과 주식·채권 등을 운용하는 KDB자산운용, 사회간접자본(SOC) 및 인프라에 투자하는 KDB인프라 등을 시장에 내놓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은이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재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경기를 봐가며 산은PE가 지분을 들고 있는 대우건설 매각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산은은 민간 ‘딱지’를 완전히 털어내 본연의 정책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 돌아가면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중심축’이 될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정부는 산은금융의 계열사 및 관계사를 매각, 4조원 안팎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약 3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대우증권 매각으로 2조원, 업황이 좋지 않은 KDB생명과 대우조선 지분 매각 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규모의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과거 산은의 역할을 회복하고 거대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일련의 창조경제 프로젝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은·정책금융公 재통합 가능성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국내 정책금융기관 간 재편 논의도 다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조만간 정책금융 관련 태스크포스(TF) 가동을 통해 산은과 정책금융공사 통합 이후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나머지 정책금융기관 전체에 대한 밑그림까지 다시 그릴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정책금융기관별 영역 경쟁과 업무 중복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단기간 내에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은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 여부다. 산은을 정책금융기관으로 되돌리기로 한 이상 정책금융공사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어서다. 정부는 두 회사를 합쳐 원래의 산은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 중이다.

다만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금융공사가 이미 4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커진 상황에서 산은과의 재통합 작업을 추진할 경우 일부 인력과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 및 그에 따른 갈등이 불가피해서다. 산은에서 소매금융을 완전히 떼어 낼 경우 다이렉트뱅킹 업무를 위해 선발한 100여명의 고졸 직원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거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단순히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물리적 통합이 아닌, 다른 기관을 포함한 정책금융기관 전체의 역할 재정립 차원에서 재통합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장창민/류시훈/이상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