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리 인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정책을 두고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경제의 단기적인 경기부양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성장세 제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금리인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지난해 하반기 저점을 기록한 우리 경제의 힘이 매우 약해 금리인하를 통한 수요 자극이 필요하다. 4분기 이후 회복세가 점쳐졌지만 이렇다 할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경기의 회복 등 외부환경 개선으로 점차 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여 금리인하가 경기순응성(대출증가)을 띨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은 남는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보다는 지난해 4분기의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더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디플레이션갭이 지속 확대될 정도로 경기흐름이 워낙 부진해 지금이라도 금리인하를 통해 회복세를 다지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정책조합을 통해 재정의 부담을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이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추경의 규모를 축소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국가부채비율을 늘리지 않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능한 한 국가부채비율을 낮춰두어야 한다. 빠른 인구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 급증은 불가피하다. 소득불평등도 확대 등의 이유로 복지제도가 강화되는 흐름까지 감안한다면 나라의 곳간을 사수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금리인하는 국내총생산(GDP)의 3%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원화 강세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최근 북한 변수로 인해 원화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중기적인 흐름은 원화 강세로 볼 수 있다. 현 시점의 금리인하는 별다른 물가부담 없이 수요증대를 부추기는 가운데 원화약세 요인으로 작용해 경기부양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금리인하가 서민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서민물가는 수요측면이 아니라 유통과정이나 이상기후와 같은 공급측면의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금리인하는 주요국들과 거시경제정책 흐름을 같이한다는 측면도 있다. 정책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양적완화를 강화하며 경기회복을 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책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 2.75%의 기준금리 수준이 충분히 낮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상당히 낮아졌고 물가가 1%대로 안정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경기부양적인 금리 수준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의 경기상황 변화에 대한 통화정책의 대응수준에 비해 한국의 정책금리 변동성이 크게 낮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리인하가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그친다면 커다란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단기적 경기부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저성장에 익숙해져 가는 한국 경제의 불황기 성장률 수준을 높이면서 경제주체의 심리를 개선하고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여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경기부진이 장기화되면 심리 위축으로 투자가 부진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성장률을 낮추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구고령화로 노동투입 증가가 둔화되기 때문에 성장세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숙명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가 경제의 장기적인 흐름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인정해도 현재의 성장세 하락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 노동의 양적 투입 증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에 대략 4분의 1만을 기여해 왔을 뿐이다. 노동의 질적 개선이나 기술진보와 같은 총요소생산성 증가가 효과적으로 이뤄진다면 성장세의 급격한 하락을 막을 수 있다.

인적 물적 투입보다 지식과 정보의 가치가 커지는 상황에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생산적인 추경과 동시에 과감한 금리인하를 통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혁신의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제고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리인하는 한국 경제의 자신감 회복의 계기이자 혁신경제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