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조합에 납품단가 협의권…대기업에 협상 의무화…5억 이상 등기임원 연봉 공개
올해 말부터 원자재 값이
급등할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중소 납품업체를 대표해 대기업과 직접 납품단가 인상폭을 협의할 수 있게 된다. 또 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단가 부당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 등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3배를 손해배상액으로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시행된다. 이와 함께 연봉 5억원 이상의 상장사 등기이사 보수내역이 내년 사업보고서 작성 때부터 공개된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경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반기업 정서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정무위는 10일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의결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로 넘길 예정이다. 법안은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이날 의원 입법 형태로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지금은 중기협동조합이 대기업에 조정신청만 할 수 있는데 이를
조정협의권으로 강화한 것이다. 공정위도 기존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에 찬성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은 단순 이의제기 수준으로 대기업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은 실질적으로
단가 인상을 협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중기협동조합이 대기업에 납품단가 조정을 협의할 수 있는 요건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지만 이 과정에서 현행 납품단가 조정신청 요건을 참고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동시다발 경제민주화 법안 우려"

현재 중기협동조합이 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은 납품금액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재료 가격이 납품계약 체결일 기준으로 15% 이상 오른 경우 등이다.

정무위는 이와 함께 현재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 경우에만 적용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손해배상액은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다.

한편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재계 총수와 CEO의 개별 연봉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연봉 5억원(성과급 포함)
이상 상장사 등기이사 및 감사가 대상이다. 이에 따라 200여개 기업의 임원 600여명이 연봉 공개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재계 총수의 개별 연봉도 공개된다.

정무위 소속인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과 일본 사례를 보더라도 상장사의 최고경영자와 임원진의 보수를 공개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주주의 감시를 통해 유능한 임원이 선임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동시다발적으로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건 맞지만, 대기업들이 각 조합들과 납품가 조정을 협의하도록 한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대기업도 타격을 입겠지만 현재 원청사업장의
75%가 중소기업인 만큼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간 분쟁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원 연봉 공개에 대해서는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광호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대기업 임원 연봉이 공개될 경우 연봉이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 사회적으로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여론에 밀려 연봉을 많이 줄 수 없다면 어떻게 유능한 인재를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하도급법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 납품을 받는 업체(원사업자)와 납품업체(하도급자)가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소기업 대통령’을 강조하면서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주용석/이정호/이태명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