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메랑으로 돌아온 '비용절감'
노사분규와 산업재해 중 어느 쪽이 산업계에 미치는 노동력 손실이 클까. ‘파업과 대규모 집회로 생산 현장을 비우는 노사분규’라는 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산업재해다. 노사분규의 100배를 훨씬 넘는다. 2011년 산재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는 5477만7000일이었다.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42만9000일)의 약 128배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대형 산재사고로 전국이 들썩였다. 지난해 구미 불산누출사고는 23명의 사상자를 냈고, 지난달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로 17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하지만 산업 현장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건설현장 680곳에 대해 2월과 3월 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94%인 639곳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286곳(42.1%)은 현장소장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정도로 중대한 위반이 발견됐다.

사업주들이 산재예방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비용절감’과 무관하지 않다고 고용부 관계자는 전했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 산업재해는 설비노후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설비 교체에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대응이 쉽지 않음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노후시설 교체 등을 포함해 생산 현장에 맞는 조치를 하는 것이 산재를 예방하는 기초이자 지름길”이라며 “울산석유화학단지에 공장이 있는 한국바스프는 노후된 부품을 적기에 교체해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잦은 산재사고는 산업경쟁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1990년대 미국의 엑슨과 셰브론, 이탈리아의 에니켐 등 선진국의 화학업체에서 잇따라 발생한 폭발·화재사고는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화학업체들이 시장에서 한 단계 치고 올라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1984년 인도 보팔의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를 누출한 미국 유니언카바이드는 이 사고로 회사 문을 닫았다.

지난달 여수공장에서 폭발사고를 당한 대림산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빠른 조업 재개를 위해 벌인 작업이 사고로 이어지면서 공장 가동은 한 달가량 멈췄고, 언제쯤 가능할지도 기약이 없다. 산업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