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열정·도전…스펙 날려버린 '위대한 탄생'
양복에 넥타이를 매기도 했지만 청바지나 기름때 묻은 정비복 차림도 보였다. 스케치북을 옆에 끼거나 한 손에 기타처럼 생긴 4현 악기인 우쿨렐레를 든 이도 있었다. 여섯 곳으로 나뉜 부스 안에서 한 지원자는 가슴에 매단 곰 인형과의 대화로 자신을 소개했고 다른 지원자는 좁은 단상 위에서 백텀블링을 선보였다.

11일 서울 한양대 종합기술연구원 6층 대회의실은 때아닌 오디션 열기로 달아올랐다. 복도에 늘어선 의자엔 오디션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지원자들의 혼잣말 연습이 한창이다.

SK가 지난해 처음 시작한 오디션 형식의 ‘바이킹 챌린지’ 인턴채용 현장으로 지원자들은 스펙이 아니라 자신의 ‘끼’를 보여야 한다. 학력과 학점이 아니라 열정을 갖고 도전을 즐기는 바이킹형 인재를 뽑기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서류전형 지원서엔 이름과 연락처, 생년월일과 최종학위를 받은 연도 정도의 정보만 담겨 있다.

올해 1700여명의 지원자 중 450명이 이날 서울과 부산을 포함해 전국 6개 주요 도시에서 예선전을 펼쳤다. 지원자들은 2명의 면접관을 앞에 두고 단상 위에 올라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고 뒤편의 대형 화면을 활용해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미술관을 찾아 7개월간 유럽을 돌아다녔어요. 스페인 770㎞를 도보로 여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토익학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녀요. 요즘은 아크릴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조원재 씨(28)는 SK플래닛 마케팅 부문에 지원했다.

조씨는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통합 플랫폼이 필요한 시대”라며 ‘음악 지식확장 검색서비스’라는 사업아이템도 꺼내 놓았다. 그는 “검색한 곡뿐 아니라 연관 장르까지 범위를 넓히되 검색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평점이나 리뷰 등과 연계할 수 있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프레젠테이션엔 시간 제약이 없고 면접관의 질문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동차 정비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디션장을 빠져나온 이인선 씨(25)는 국민대 자동차학과 4학년이다. 그는 “태양광을 활용할 수 있는 자동차 소재에 대한 얘기를 했다”며 “취업을 위해 처음 본 면접인데 실무적인 면에서 강점을 충분히 못 보여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입사한 정현욱 SK브로드밴드 사원은 올해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오토바이로 횡단했다는, 도전정신이 강한 지원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에 적응하고 맞춰가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 것에서 벗어나 창조적 파괴를 할 줄 아는 인재가 돋보이게 마련”이라고 했다.

이날 지원자 가운데선 학비를 벌기 위해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학창시절 봉사활동만 2500시간을 한 이도 있었다. 요리사로 일하다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배워 앱 개발자의 길을 걷고 싶다며 지원한 이도 눈길을 끌었다. 예선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다음달 합숙을 하며 결선을 치르고 6월께 최종 합격자가 발표된다. 올해 인턴십 결과에 따라 내년 공채를 통해 정식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다.

임성수 SK종합화학 인력팀장은 “회사 입장에서 개개인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지원자들이 표현하는 방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오디션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