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무줄 정책에 외국계 기업 '골탕'
2011년 2월 독일 통신사인 도이치텔레콤은 인도 정부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2006년 미국 투자회사들과 만든 합작법인을 통해 인도 초고속통신망 사업에 3억4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인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취소시킨 것이다.

도이치텔레콤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에게 직접 서신을 보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항의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국제상업회의소에 중재를 요청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도이치텔레콤과 인도 정부의 갈등은 왜 많은 기업이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인도를 포기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도이치텔레콤이 첫 투자를 결정한 2006년에 인도는 가장 유망한 투자처 가운데 하나였다. 도이치텔레콤과 공동 투자를 한 콜롬비아캐피털의 도널드 도어링 최고경영자(CEO)는 “통신 부문 투자는 떠오르는 인도 경제에 편승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장밋빛 전망의 발목을 잡은 건 인도 감사원이었다. 감사원이 문제삼은 부분은 왜 프로젝트를 경매에 부치지 않고, 한 업체와 계약했느냐는 것이었다. 경매에 부쳤으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지 전문가들은 “감사원의 결정은 법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외국인 직접 투자에 반대하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감사원의 지적에도 인도 정부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억달러의 외국인 투자 건을 취소시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여론에 떠밀린 결정이라는 방증이다.

인도가 외국 기업에 ‘시비’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도 조세당국은 올초 정유회사 로열더치셸과 영국 통신사 보다폰에 탈세 혐의로 각각 10억달러와 2억4000만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미국 의류업체 갭, 전자업체 제너럴일렉트릭 등도 비슷한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인도 정부와 법정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도어링 CEO는 “외국 투자자들 사이에 인도 정부가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숫자로도 드러난다. 인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20억7800만달러로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했다.

인도 경제는 FDI에 목마른 상황이다. 경상수지 적자 폭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2012회계연도 상반기(4~9월) 인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6%, 750억달러 규모다. 경상수지 적자가 악화되면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입 물가가 올라간다. 안 그래도 높은 물가에 신음하고 있는 인도 경제에는 치명타다. 팔라니아판 치담바람 재무장관이 최근 “FDI와 관련된 일체의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안이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인도의 뿌리 깊은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인도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자동차 판매는 전년 대비 6.7% 줄었다. 인도에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든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중산층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얘기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