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 7층은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난 듯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전날 정부와 여당, 청와대의 잇따른 금리 인하 요청에도 전격 동결을 결정한 금융통화위원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의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위원은 만남 자체를 피했다. 한 위원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기자를 돌려세웠다.

○금통위원들 “피곤하다”

시장 전망 뒤엎은 금통위 11일 금리동결…긴박했던 전날, 5시간 마라톤 회의 후 '동결'로 기울어
금리 동결에 따른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와 시장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하지만 동결의 불가피성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채권시장 관계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한은을 원망하는 모양인데 금리를 여론에 따라 정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금리 동결의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한 경제 전망치 수정 작업을 지휘한 사람이다.

이번에 금리 결정을 좌우한 것은 금통위원들에게 보고된 올해 경제전망 수정치였다. 정부가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3%로 대폭 끌어내린 것과 달리 한은은 2.8%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금통위 개최 이틀 전부터 성장률 수정치가 2.6%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작년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이 낮아진 데 따른 기저효과 정도만 반영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 같은 전망은 실제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설마하는 분위기였다. 당-정-청의 금리 인하 압박이 그만큼 거셌기 때문이다.

○“오로지 경제만 봤다”

한은 집행부가 금통위원들을 상대로 금통위 전날 오전부터 시작한 경제동향 보고는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오후 1시30분까지 5시간이나 이어졌다. 경제가 회복 쪽으로 돌아섰다는 데 대부분 위원이 공감했지만 회복 속도에 대한 이견도 없지 않았다. 팽팽하던 분위기가 동결 쪽으로 기운 건 경기가 하반기에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내부 설득력을 얻으면서였다. 한 금통위원은 “정부는 추경 편성과 함께 금리 인하라는 정책공조를 요구할 수 있지만 금통위는 경제전망만을 보고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이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금리 인하를 주장해온 하성근 위원 외에 한 명의 금통위원이 더 금리 동결에 반대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종 윤곽은 2주 후 금통위 의사록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추가 인하 멀어졌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당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경기가 미약하나마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진단을 조금도 수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김 총재의 발언 내용을 볼 때 ‘상저하고’ 전망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금리를 계속 동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연구위원도 “한은은 향후 금리 인하 대신 총액한도대출 등 미시적인 정책 공조를 추구할 것”이라며 “남북관계 급랭이나 유럽 재정위기 고조 등 돌발 악재가 나오지 않는 한 추가 인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서정환/고은이/이심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