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권총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맞붙은 1554년 렌티전투. 독일 기병대는 대대 단위로 길게 늘어선 채 프랑스 보병을 공격했다. 이들은 프랑스군의 몇 걸음 앞에 멈춰 서더니 일제히 권총을 발사하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맨 앞줄 기병들이 돌아나가자 두 번째와 세 번째 줄이 차례로 나서며 총을 쏘아댔다. 프랑스 병사들은 기겁했다. 이 같은 무기와 기동작전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찰스 바우텔의 책 ‘무기의 역사’에 나오는 장면이다. 불을 붙여서 쏘는 화승식 대신에 톱니바퀴식 발화장치를 사용한 치륜식 권총이 전쟁에 처음 활용된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한 손으로 말을 다루면서 다른 손으로 총을 쏘아야 하는 기병들에게 이 권총은 최고의 무기였다. 이후 권총은 프랑스 기병들을 비롯해 지중해와 대서양을 누빈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해적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권총을 처음 만든 것은 14세기 초였다고 한다. 권총을 뜻하는 피스톨(Pistol)의 어원으로 ‘이탈리아 피스톨라(Pistola)에서 처음 만들었다’거나 ‘초기 구경이 옛 화폐 피스톨의 크기였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정확하진 않다. 아무튼 초창기의 화승식부터 수석식, 뇌관식 등 근대 권총과 콜트, 베레타, 브라우닝 등 현대식 권총까지 다양하게 진화했다. 총구가 두 개인 쌍발 권총도 있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사용한 것은 벨기에산 M1900형 브라우닝 권총이었다. 이 모델은 5년 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때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에도 사용됐다.

영화 ‘다이하드3’에 나오는 브루스 윌리스의 권총은 베레타 M9였다.

국산 권총이 나온 건 1980년대다. 대우정밀공업(지금의 S&T모티브)이 1984~1988년 개발해 1989년에 보급한 K-5다. 지금의 국군 제식권총이 이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는 DP-51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권총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권총은 1432년의 ‘세총통’으로 길이 15㎝에 구경 9㎜, 무게 130g 정도의 ‘작고 휴대하기 편한 화약식 발사화기’였다. 세종이 1437년 6월 평안도 절제사에게 내린 훈령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설계도와 제원은 ‘국조오례의서례’(1474년)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엊그제 서울 도심에서 권총 자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총기 소유가 불법이기 때문인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총기 반입 경로에 더 관심이 쏠린 듯하다. 하긴 무엇이든 사용하기에 따라 사람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