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1831년께, 채색목판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1831년께, 채색목판화)
이 사람처럼 이사를 많이 다닌 사람은 드물다. 멋진 풍광을 찾아 평생 93차례나 짐 보따리를 쌌다. 늘 앉은 곳에 채 온기가 돌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또 이 사람만큼 감정가를 고뇌에 빠트리는 사람도 드물다. 이름과 호를 바꾸기를 무려 30여 차례. 그의 진품을 감정하기란 보물찾기와 다름없다.

주인공은 에도시대 최고의 우키요에(채색목판화)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 한곳에 안주하는 삶이 예술가에게 독이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산수화 풍속화 화조화를 넘나들었다.

변신의 결정판은 채색목판화에서 이뤄졌다. ‘후지산36경(富嶽三十六景)’ 연작의 하나인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는 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구도가 파격적이다. 후지산을 휘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속에 작게 묘사, 대상이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느낌을 자아낼 수 있음을 일깨운다. 금방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한 노도는 인간을 징벌하려는 신의 손아귀 같다. 새로운 예술을 고민하던 19세기 서구 화가들이 이 작품을 보고 열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호쿠사이의 작품 속에서 한곳에 머물기를 거부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