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으로 30만명 빚 감면받지만 채권추심원 30만명 일자리는 풍전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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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국민행복기금의 그늘
채무재조정 프로그램 가동
개인 부실채권 거래 사실상 '뚝'…전국 추심직원 해고 압박
채무재조정 프로그램 가동
개인 부실채권 거래 사실상 '뚝'…전국 추심직원 해고 압박
“행복기금으로 30만명 채무를 감면해준다는데, 그것 때문에 30만명 채권추심원의 일자리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을 찾아온 채권추심원 A씨(46)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며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민을 도와준다며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약사항인 국민행복기금이 또 다른 서민인 채권추심원들을 울리고 있다. 대규모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개인 부실채권 거래가 사실상 끊겼고, 이 때문에 채권추심 직원들이 대량 해고되고 있어서다.
외환위기 전까지 대우자동차 지점장으로 일했다는 A씨는 서울 강남의 한 영세 대부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말이 대부업체이지 하는 일은 채권추심이다. 캐피털사에서 7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대출액의 2~3% 정도에 싸게 사와서 4% 안팎에 회수해 차액을 월급으로 가져간다. 회사엔 그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4명 더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부실채권(NPL) 매니저’라고 부른다. A씨는 “행복기금 출범 이후 5명 중 4명이 회사를 그만두게 생겼고 인근 50명 규모의 회사는 40명 이상을 내보냈다”고 전했다.
행복기금은 4000여개 금융회사와 협약을 맺고 채무조정 신청자의 채권을 사들여 빚을 감면해준다. 금융사가 가진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법도 병행한다.
A씨는 “행복기금 출범이 확정된 뒤 상각 채권을 거래하는 시장이 완전히 정지된 탓에 할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을 행복기금이 대부분 흡수하면서 채권을 사겠다는 사람도, 팔겠다는 사람도 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채무재조정 대상자들의 정보가 행복기금 전산망에 기록되면서 추심 직원이 따로 필요치 않게 된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나처럼 해고 압박을 받고 있는 채권추심원 수가 전국에 1만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시장이 쪼그라들 수 있지만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으로 매입 대상을 한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며 “추심원들의 일자리 때문에 채무재조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행복기금을 하지 말라 할 수는 없지만, 정책 때문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에게 퇴직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심원에게는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게 관행으로 돼 있는데 이것만이라도 정부가 신경써 달라”는 하소연이다.
추심원에 대한 세간의 안 좋은 인식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여전히 불법추심에 대한 민원이 적지 않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채무자를 땅에 파묻고, 수시로 괴롭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채권추심원들은 대개 월급이 100만~200만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도 벅찬데, 불법 채권추심을 하다가 걸리면 5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엔 채무자 앞에서 쩔쩔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도 야간에는 경비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도 대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 등 투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인 밑바닥 서민”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으로 나쁜 놈으로 인식돼 친구들한테 명함도 못 주지만, 우리도 다 자식이 있는 가장들입니다. 정책 때문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습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서민을 도와준다며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약사항인 국민행복기금이 또 다른 서민인 채권추심원들을 울리고 있다. 대규모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개인 부실채권 거래가 사실상 끊겼고, 이 때문에 채권추심 직원들이 대량 해고되고 있어서다.
외환위기 전까지 대우자동차 지점장으로 일했다는 A씨는 서울 강남의 한 영세 대부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말이 대부업체이지 하는 일은 채권추심이다. 캐피털사에서 7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대출액의 2~3% 정도에 싸게 사와서 4% 안팎에 회수해 차액을 월급으로 가져간다. 회사엔 그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4명 더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부실채권(NPL) 매니저’라고 부른다. A씨는 “행복기금 출범 이후 5명 중 4명이 회사를 그만두게 생겼고 인근 50명 규모의 회사는 40명 이상을 내보냈다”고 전했다.
행복기금은 4000여개 금융회사와 협약을 맺고 채무조정 신청자의 채권을 사들여 빚을 감면해준다. 금융사가 가진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법도 병행한다.
A씨는 “행복기금 출범이 확정된 뒤 상각 채권을 거래하는 시장이 완전히 정지된 탓에 할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을 행복기금이 대부분 흡수하면서 채권을 사겠다는 사람도, 팔겠다는 사람도 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채무재조정 대상자들의 정보가 행복기금 전산망에 기록되면서 추심 직원이 따로 필요치 않게 된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나처럼 해고 압박을 받고 있는 채권추심원 수가 전국에 1만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시장이 쪼그라들 수 있지만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으로 매입 대상을 한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며 “추심원들의 일자리 때문에 채무재조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행복기금을 하지 말라 할 수는 없지만, 정책 때문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에게 퇴직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심원에게는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게 관행으로 돼 있는데 이것만이라도 정부가 신경써 달라”는 하소연이다.
추심원에 대한 세간의 안 좋은 인식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여전히 불법추심에 대한 민원이 적지 않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채무자를 땅에 파묻고, 수시로 괴롭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채권추심원들은 대개 월급이 100만~200만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도 벅찬데, 불법 채권추심을 하다가 걸리면 5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엔 채무자 앞에서 쩔쩔매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도 야간에는 경비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도 대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 등 투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인 밑바닥 서민”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으로 나쁜 놈으로 인식돼 친구들한테 명함도 못 주지만, 우리도 다 자식이 있는 가장들입니다. 정책 때문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습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