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현실화 필요한 정신과 약물 보험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건강보험급여 심사 기준을 만들고 결정하는 과정에 의료 소비자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건강보험급여 적용 기준이 몇 가지 개선되기도 했다.

주의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의 경우 18세 이상에서는 전액 자기 부담이었는데, 올 1월부터는 치료를 받아온 환자가 18세 이상이 돼도 의료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범위가 확대됐다. 조현병(예전의 정신분열병) 치료제 중 장기 지속형 주사제의 급여 기준도 지난달부터 ‘자주 재발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는 환자’에서 ‘순응도 저하로 인한 재발로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로 변경돼 적용 대상이 넓어졌다.

그러나 아직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약물 치료 대상의 제한이다. 원칙적으로 의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대상과 범위 안에서 사용하게끔 돼 있다. 문제는 의약품 승인 이후에 교과서적으로 해당 약제의 적용 범위가 넓어진 경우에도 허가사항이 개선되지 않아 처방이 어렵다는 데 있다. 임상에서 해당 약물을 환자에게 처방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처방을 할 수 없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오프 라벨(off label)’이라고 한다.

‘오프 라벨’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문제가 돼 왔다. 하지만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미국은 정신의학 약물의 60~80%가 오프 라벨에 해당함에도 전문의 소견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정신과 의사가 임상적으로 환자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치료법에 대한 선택을 급여 규정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ADHD 치료제는 18세 이후에 처음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아직 사용이 제한돼 있다. 이는 성인 ADHD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신질환은 주변의 편견 탓에 초기 치료를 기피하거나 방해받는 경우가 많고, 이는 재발의 원인이 된다.

정신질환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한창환 <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