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정나연 양(18)은 요즘 선생님이나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고민이다.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면 자꾸 되묻는 버릇도 생겼다. 친구들이 ‘사오정’이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두통까지 심해져 학교 성적도 많이 떨어졌다.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를 해봤더니 양쪽 귀 모두 청력이 많이 떨어져 ‘소음성 난청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옆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라는 것이다. 의사는 평생 청력 회복이 불가능하므로 보청기를 끼고 다닐 것을 권했다.

정양은 중학생 때부터 잠을 잘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잘 정도로 MP3를 달고 살았다. 2~3년 전부턴 등하교는 물론 평상시에도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게 돌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인 정양은 평생 보청기를 끼고 살아야 한다.

흔히 노화성 질환으로 알려진 난청이 젊은 층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휴대용 음향기기의 최대 음량을 제한하는 최대 음량 권고기준까지 마련했다.

◆이어폰 마니아들, 난청에 무방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소음성 난청’으로 병원을 찾은 10대 환자의 연도별 진료 건수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429건으로 5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소음성 난청이 급증하는 추세다. 20~30대 소음성 난청 진료 건수는 지난해 1528건으로 전년보다 10% 늘었다.

심평원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으로 병원을 찾는 10~30대가 60~70대 노인보다 20%가량 많다. 김재원 인하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소음성 난청 환자는 시끄러운 공장에서 일하는 40대 이상 근로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이어폰 사용이 늘면서 젊은 층에서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리이비인후과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병원을 방문한 난청환자 1만1574명을 조사한 결과 3년 새 난청 환자가 두 배 증가했다. 특히 양쪽 귀 모두 청력 저하가 나타나는 양측성 난청이 78.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박홍준 소리이비인후과 원장은 “90데시벨(dB) 이상의 볼륨을 유지한 채 이어폰을 끼고 하루 15분 이상 규칙적으로 소음에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이어 “귓속에 끼는 이어폰을 거의 매일 달고 살 경우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고막에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청세포 손상을 더 많이 초래한다”며 “지하철 버스 등의 소음 환경에서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주변 소음을 이겨내기 위해 볼륨을 계속 높이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귀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많이 사용하거나 헤비메탈·록 음악, 클럽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이 소음성 난청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개인별 민감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트럭이 지나갈 때 나는 80~90dB 이상 소음에 3~4년간 노출되면 필연적으로 소음성 난청 장애를 겪게 된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소리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면 빠른 경우 몇 년 후 소음성 난청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소리의 크기는 제트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비슷한 100~120dB에 가깝다.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노래방이나 PC방 소음도 100dB이 넘는다.

◆주변 소리 지각능력 떨어질 때 의심

소음성 난청이 진행되면 우선 주변 소리에 대한 구별 능력이 떨어진다. 옆에서 자신을 불러도 가만히 있거나 엉뚱한 반응을 보이기 쉽다. 텔레비전을 볼 때 볼륨을 계속 높이고, 전화를 받을 때 상대방에게 되묻는 버릇도 생긴다. 특히 고주파 음에 대한 장애 때문에 여성이나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못 듣는다.

귀에서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이 맴도는 이명(耳鳴)이 사나흘 계속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온몸이 피곤하고 잠이 오지 않으며, 심할 경우 고혈압과 소화 불량, 집중력 저하 등과 같은 신체 증상도 나타난다.

불행히도 현대 의학으로도 소음성 난청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달팽이관 속 유모세포가 손상되면 소리 구별 능력이 떨어지는데, 청신경까지 손상되면 평생 청각 장애를 안고 보청기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보청기를 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이 들어 생길 가능성은 크다.

박 원장은 “스, 츠, 크, 프 등의 자음소리 발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거나, 두세 번 되묻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자기도 모르게 크게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자꾸 늘어난다고 느껴지면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청력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폰 사용 최소화해야

최지선 소리이비인후과 원장은 “소음성 난청으로 한번 망가진 청각은 대부분 되돌리기 어렵고 2차 증세로 이명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이어폰으로 높은 볼륨의 소리를 장시간 듣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난청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다면 보청기나 임플란트를 통한 청력재활술, 인공와우 수술을 권하게 되는데 평생 착용하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음성 난청을 예방하려면 지하철 버스 등에서의 이어폰 사용을 줄이고, 30~40분 듣고 10분 정도 쉬었다 듣는 것이 좋다. 또 소음 유발이 더 큰 이어폰보다는 머리에 둘러쓰는 헤드폰이 좀 더 낫다.

시끄러운 곳에서 귀가 간지럽다고 면봉으로 귀를 자주 후비는 것은 매우 안 좋은 습관이다. 귀 내부에 물리적인 상처가 생겨 난청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소음성 난청이 의심되면 1년에 한 번 이상 청력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정상 청력이라도 2~3년에 한 번 정도는 청력검사를 통해 난청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아직까지 보청기나 인공와우 외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최지선 ·박홍준 소리이비인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