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앤서니 퀸 "삶은 등산과 같다"
“인생이란 등산과 같다. 나는 에베레스트산을 오르진 못했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부의) 휘트니산은 올랐다.”

할리우드 명배우 앤서니 퀸이 72세 때 아카데미 공로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받은 뒤 남긴 말이다. 그에게 에베레스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었을까. 65년간 1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스타 배우였지만 그가 아카데미 시상대에서 받은 상은 조연상 2개가 전부였다.

퀸은 1915년 4월21일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이 됐다. 구두닦이, 신문배달, 권투도장의 스파링 파트너 등을 하며 가족 생계를 도왔다.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다. 연기학원에서 잡일을 하던 중 18세 때 처음 연극무대에 올랐다. 연기에 흥미를 느낀 퀸은 1936년 패러마운트픽처스의 단역배우 모집에 응모, 영화 ‘패롤’로 데뷔했다.

그는 자신의 핸디캡을 적극 활용했다. 백인 미남 배우들이 꺼리는 유색인종 역할은 퀸의 차지였다. ‘혁명의 사파타’(1952)에서 사파타(말런 브랜도)의 동생 역을 맡아 혁명가에서 주정뱅이로 타락하는 연기를, ‘열정의 랩소디’(1956)에서는 고갱이 돼 주인공 고흐(커크 더글러스)보다 더 빛나는 연기를 펼쳤다. 그의 대표작인 ‘그리스인 조르바’(1964)에선 농부 조르바 역을 맡아 ‘연기의 신(神)’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개인적인 삶도 영화 같았다. 세 번 결혼했고 두 번 이혼했다. 81세 때 40세 연하의 비서로부터 얻은 딸까지 모두 13명의 자녀를 뒀다. 말년에는 회화와 조각에 심취, 1998년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2001년 보스턴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눈을 감았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