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말아야 할 법은 태어나고, 정작 태어나야 할 법은 사장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치권의 입법 활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원내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기 영합주의’를 언급하며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일방통행식 입법 추진에 제동을 건 것은 현재 각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무차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법안들이 현 경제 상황과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세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비현실적 법안, 경제 해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우여 대표. /연합뉴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우여 대표. /연합뉴스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경제민주화 법안과 관련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원내대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하도급법과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 공개를 의무화한 자본시장법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직후인 지난 15일 “선거 때는 이해가 되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대기업 등이 무조건 무슨 문제가 큰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기업인의 의욕을 자꾸 꺾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경제는 생물인데 생물의 특징은 죽이기는 쉽고 살리기는 어렵다는 점”이라며 “경제를 너무 쉽게 생각해 아무렇게나 대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도부의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각 상임위에선 일부 여당 의원들이 앞장서 사회적 논란이 식지 않은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체휴일제’다. 안전행정위원회는 1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이어지는 평일에 하루를 쉬게 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재계에선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추가 인건비와 생산감소액을 합쳐 연간 3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신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재취업시 2%의 가산점을 주는 ‘엄마가산점제’도 형평성 논란을 빚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논의 연기


정치권과 정부, 재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처리는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속도조절론을 재차 강조한 상황이어서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일감을 몰아준 회사와 일감을 넘겨받은 회사 모두 처벌하자는 내용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졌지만 부당 내부거래의 위법성 기준을 놓고는 각계의 주장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행법에는 위법성 기준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정하고 있지만 개정안에는 ‘현저히’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판단 기준을 ‘경제력 집중을 유지·강화하는 거래’로 변경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재계는 “사실상 계열사 간 거래를 모두 부당 내부거래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계열사에 대한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경우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해 형사 처벌하는 이른바 ‘30% 룰’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와 야당 측에서조차 과잉 입법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정무위 소속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체할 대체 입법안을 발의했다. 이 대체 입법안은 개정안에 포함된 ‘30% 룰’을 없애는 대신 공정위의 부당 내부거래 단속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 의원은 “정무위에서 논의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상적인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민주화 이슈가 대선 공약이므로 반드시 입법해야 한다는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