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따라잡기' 틀을 깨야 창조경제 열린다
새 정부의 국정 기조인 창조경제가 불신받는 가운데 외국 언론은 우리의 성장동력이 사라졌다고 경고한다. 연 10% 수준의 고도성장에 익숙하던 우리가 지금은 몇 년째 2% 성장에서 허우적거린다. 창조경제가 성장동력을 가동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고 느낀다.

아무도 못 가본 땅을 처음 찾은 사람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인류 최초의 산업화는 선진국들이 전인미답의 신경지를 개척해 이룬 성과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제발전은 이들의 뒤를 쫓아가는 ‘따라잡기(catch-up)’의 결실이다.

개도국은 선진국이 거쳐야 했던 실패를 피해 가고, 몰라서 멀리 돌아간 길을 질러가는 후발주자의 이점을 누린다. 선진 산업국들의 검증된 성공사례는 따라잡는 개도국에 낭비를 최소화하는 효율적 성장경로를 제공한다. 선진국 성공사례를 학습하고 모방하면 개도국은 힘겨운 창의·혁신 없이도 빨리 성장한다.

반면에 선진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창의와 혁신이다. 세상에 없던 좋은 것을 새롭게 창조하거나, 있던 제품이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비용을 줄여 나가야 성장이 가능하다. 혁신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선진국들의 성장률은 보통 연 3~4% 수준으로 ‘따라잡기’ 성장국들의 연 7~10%보다 낮다.

사람들이 유능하고 이들의 노력을 잘 결집하는 제도를 갖춘 나라는 경제활동의 성과도 좋다. 물론 외적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각국이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인력 수준과 제도다. 그동안 우리의 정책은 ‘따라잡기’에 적합한 인력과 제도를 배양하고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 권위적 정부는 한편으로는 선진국 사례를 학습하고 모방하도록 권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과 노력이 설정된 성장경로를 따라서 배정되도록 시장경쟁을 제한하고 규제를 강화해왔다.

그런데 일단 따라잡기에 성공하고 나면 더 이상 따라잡을 목표가 없어진다. 동시에 지금까지 잘 이끌어주던 검증된 성장경로도 함께 사라지므로 ‘이탈의 낭비’를 막아오던 권위적 정부의 역할도 소멸한다. 실패를 피해 가는 ‘낭비 최소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감수하는 ‘실험 최대화’의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다.

한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었다는 경고는 우리의 따라잡기가 끝났음을 뜻한다. 종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부가 현재 시점을 패러다임의 전환기로 진단한 것은 백번 옳다. 나라 경제가 따라잡기의 끝자락에 접어든 만큼 모방과 규제의 ‘따라잡기’형에서 ‘창의 혁신’형 선진적 패러다임으로 이행해가는 대개혁이 필요하다.

창의는 자유의 산물이므로 창조경제는 자유화에서 시작한다. 융합을 저해하는 영역 구분의 규제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발상을 제한하는 규제는 모두 철폐하는 것이 옳다. 또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을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창조자가 그 성과를 온전하게 누리도록 보장하는 지식재산권 보호의 강화, 우수한 창조상품이 아무 방해 없이 소비자들에게 이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정경쟁질서 확립이 필요하다. 연구·개발비도 지원해야 하지만 시행착오를 핑계삼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평가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체제를 자유화와 유인 활성화로 바꾸는 데 더하여 함께 필요한 것은 창의적 인력양성이다. 장기적으로 기술력과 창의적 의식을 갖춘 인력을 길러내는 교육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보다 늦게 경제개발에 착수한 싱가포르가 아시아 지역 평가 1위의 대학을 육성해낸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따라잡기 성장의 규제 강화, 시장경쟁 제한, 모방 방조는 자유의 제한과 지식재산권의 경시 풍조를 불러온다. 이처럼 ‘따라잡기’의 패러다임은 자유 제한과 지식재산권 침탈인데,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그 정반대가 창조경제의 기본 패러다임이다.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역전이 필요하다. 규제 정비를 통한 자유화,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공정경쟁 질서 확립, 창의지향적 교육개혁은 창조경제 시대에 진입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