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년 (停年)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는 갑작스런 재난을 당해도 가족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가 보살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19세기에 극심한 가난이 유럽을 덮치자 빈민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이는 체제전복을 노리는 급진적 노동운동으로 점차 변해갔다.

1880년대 독일의 극빈 근로자는 100만명을 넘었다. 이들의 생계와 근로가 적정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은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치안 불안도 큰 걱정거리였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제와 정년 65세 제도를 시행한 배경에 이런 사정들이 있었다. 65세가 된 근로자들을 내보내고 젊은 층에 일자리를 만들어주면서 노령자에겐 연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정년과 국민연금, 청년 일자리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탄생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정년의 의미가 좀 달라졌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나이로 제한하는 게 옳지 않다며 정년제를 폐지한 국가도 많다. 미국과 영국은 ‘연령 차별 금지법’을 적용해 항공기 조종사 등 특수직종을 빼고 정년을 없앴다. 프랑스는 연금 부담을 줄이려고 정년을 62세로 연장했으나 늙어서도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근로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 60세로 줄였다.

우리나라의 기업 평균 정년은 56~58세다. 그러나 실제 퇴직연령은 53세 안팎이다. 일본은 최근 60세에서 65세로 늘리기로 했다. 대만은 62세, 싱가포르는 63세다. 정년제의 원조인 독일은 67세다.

어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정년 60세 연장안이 의결되자 재계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면 그만큼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 1881개 가운데 60세 이상 정년제를 채택한 곳이 현대중공업, 홈플러스 등 439개(23.3%)에 불과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임금피크제 등 고용 유연화도 풀어야 할 과제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또한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2010년 11%에서 2060년 40%로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 앞에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2010년 15.2명에서 2060년 80.6명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뒷세대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좋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해 100만여명씩 줄줄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로선 더욱 속이 탈 일이다. 더구나 일자리를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다투는 상황이 됐으니 모두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