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맹학교 학생들이 법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법정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법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법정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시각장애가 판사 업무에 큰 지장이 안 된다는 걸 느낀 자리였어요.”

24일 오전 11시, 서울 도봉2동 서울북부지법 민사11부 304호. 북부지법이 25일 법의 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한빛맹학교 학생 19명을 초청,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법복을 입은 최영 판사의 재판 과정을 방청하게 하고 최 판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다. 법정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간 학생들은 재판 내내 3개의 판사석 중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최 판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력을 잃기 전 법관이 꿈이었다던 시각장애인 1급 함승연 양(16)은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면서도 “판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2010년 장애인성악경진대회에서 교육과학부(현 교육부) 장관상을 받는 등 성악가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는 이정우 양(17)은 “뉴스에 최 판사님이 나올 때마다 부모님께서 TV 앞으로 이끌었다”며 “만나고 싶어서 어제부터 기다렸다”고 했다.

법정을 나선 학생들은 최 판사가 재판 관련 자료를 읽는 청음지원실을 찾아 음성파일 자료를 들어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인 센스리더를 통해 사건 자료가 스피커에서 목소리로 들려오자 학생들은 “학교 컴퓨터실에 있는 것과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반기며 귀를 기울였다.

재판을 마친 최 판사는 시각장애인 최초로 변호사가 된 김재왕 변호사와 함께 학생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앞에 두고 오가는 얘기를 열심히 받아 치는 모습도 보였다.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의 느낌’ ‘장애를 극복한 방법’ 등 학생들은 궁금증 해소를 위해 질문을 쏟아냈다.

김 변호사는 “공부를 하려고 책을 스캔해 음성파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저작권법 위반이 아닌지를 묻는 학생도 있었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돼 앞으로 대화의 자리를 자주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