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또 과거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면에 나선 것이 더욱 충격적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3일 일본의 상원인 참의원에 출석해 “침략에 대한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궤변을 내놓았다. 바로 하루 전에는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했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절의 침략 사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놀라운 선언이요, 기억상실이며, 정신병리적 징후다.

당장 우리 정부와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당초 이달 26~27일로 예정됐던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중국도 연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역사문제 해결 없이 악화된 양국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거나, “일본이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것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사항”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일 우호의원연맹 소속 일본 의원들의 예정된 면담까지 거절했다. 한·일 양국과 한·중·일 3국간 FTA 협상 같은 것은 상당기간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일본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소아병적인 민족주의의 저질화 경향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고자 하는 자기부정의 심리상태다. 지난 20년간이나 심각한 경기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 중대한 자연재해를 연거푸 당하고 있다는 점, 정상적인 민주적 정치질서에서 일탈해 지난 6년간 총리가 여섯 명이나 교체됐다는 등의 불임사회 병리 현상들이 누적된 뒤끝에 나타나는 불행한 병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후 패전의식을 떨쳐내고 중국의 강대국화에도 대응하는 등 정상국가로 가고자 하는 내부의 염원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사를 부정하고 영유권을 시비 삼고 국가 이성과 양심까지도 부정하는 방식으로 정상국가로 갈 수는 없다. 바로 이 점을 일본 지식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나 중국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좌경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중이고 한국에도 소위 종북 친북 등 비뚤어진 사이비 병리적 민족주의가 없지는 않다. 사사건건 닭싸움하듯 논쟁에 논쟁을 더해가는 것을 외교라고 불러야 하는지…. 동북아 3국이 이웃을 적대화하는 반문명적 정치게임에 빠져든다면 이는 장차 동북아 국민 모두에게 심각한 불행을 안길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동북아의 문제아로 떠오른 상황이다. 내부 정치의 실패를 외부의 적을 만드는 비열한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동북아 3국 정치인들의 행태가 실로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