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좋은 사회
아이가 눈이 좋아졌다고 한다. 당연히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다. 군대 가기 전의 시력보다 좋아졌다니. 요즘 군대는 안구정화훈련도 따로 시키는지 모를 일이다(군사기밀이라 쉬쉬하는 건 아닐 텐데).

첫 휴가 나온 아이와 안경을 바꾸러 안경점에 갔는데 이런 반가운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눈사태다. 안경점 주인 왈, 휴가 나온 아이 중에 이런 아이들이 가끔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눈을 매달고 산 애들이 기계들과 작별을 고하며 나타난 현상인데,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보너스를 받게 된 것이다. 속이 안 좋은 아이는 속을 고쳐주고, 정신이 약한 아이는 정신을 다잡아주고, 군대는 내과고 정신과고 안과다. 그래도 군대에 간다는 것은 남자아이들에게 여간 큰 고민이 아니다. 하지만 밀린 설거지처럼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다. 씩씩하게 냉큼 다녀오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그 나이 때는 이런저런 머리를 굴리게 된다. 내가 군대 갈 때를 생각해 보면 ‘내 아들 때는 군대 안 가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얘기라 아무 생각 없이 던졌던 것 같은데, 실제로 아들이 생겼고 예상과 달리 아들은 군대에 갔다.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요즘만 보면 오히려 냉전의 기운은 더 매섭다. 하지만 몇 개월 뒤 동부전선을 나오면 아이는 취업전선으로 배치받을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바람은 전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난 다시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겪은 걸 다시, 아니 지금 아이들이 겪는 걸 다시 다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아?” 몇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젊은 친구 하나가 “그래서 전 애를 못 낳겠어요”라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청춘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회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우울하다.

정말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과연, 인디언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일까, 미국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일까? 내 생각엔 적어도 그것은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며,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지켜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은 아이들을 낳을 것이고, 늙은이들은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어쨌든 좋은 사회에 대한 나의 우답(愚答)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다.

이현종 < HS애드 대표크리에이티브디렉터 jjongcd@hsa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