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해법 놓고 다시 갈라진 남-북 유럽
긴축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가 먼저냐,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냐.

남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내달 2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 사상 최악의 실업 대란으로 돈을 풀기 바라는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속이 터질 노릇이다.

메르켈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드레스덴에서 열린 독일 저축은행회의에서 “독일 입장에서는 ECB가 금리를 올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한 잡지 인터뷰에서 “ECB가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고 말한 지 엿새 만이다.

유럽연합(EU) 결성 이전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온 독일 각료들이 금리 결정과 관련된 의견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예상되는 ECB의 금리 인하 결정에 맞서 긴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남유럽 국가들의 실물경제가 악화되면서 독일이 견지해온 긴축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25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사상 최악의 실업지표를 내놨다. 스페인은 올해 1분기 실업률이 27.2%를 기록해 실업자 수가 620만명까지 늘었다. 1200만가구 중 200만가구에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설명이다. 11.5%의 실업률을 기록한 프랑스에서도 23개월 연속 실업자가 증가해 3월 구직자 수가 320만명까지 늘어났다.

두 나라는 이미 긴축정책에서 방향을 틀고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 17일 중기 재정계획안을 발표하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목표를 3.7%로 제시했다. 해당 비율을 3% 이하로 낮추기로 했던 지난해 3월 EU 재정협약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스페인도 재정적자 목표치를 4.5%에서 6.0%로 올렸다.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 지명자는 “재정긴축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남유럽 쪽 주장에 힘을 싣고 있어 ECB의 최대주주인 독일의 긴축 주장은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데이비드 립튼 IMF 수석부총재는 이날 “저성장의 장기화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며 “고용을 늘리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일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도 “긴축 중심의 경제 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